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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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지며 이제 진짜 2019년의 마지막이 다가온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왜 그런가 했더니 크리스마스가 10일 채 안 남았는데도 거리에선 도통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지 않아서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명동 거리를 나가봐도 마찬가지다. 기자가 3시간 내내 명동 등 대로변을 걸어 다녔지만 길거리에서 캐럴을 듣긴 힘들었다.

사실 거리서 캐럴이 자취를 감춘 지는 꽤 오래됐다. 저작권법 강화됨에 따라 상인들이 캐럴을 틀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자 4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유저작물 누리집을 통해 14곡의 무료 캐럴 음원을 공개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번 캐럴 음원 공개와 함께 "공유저작물인 캐럴은 저작권료 납부 여부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4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누리집을 통해 무료로 틀 수 있는 캐럴 14곡을 공개했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4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누리집을 통해 무료로 틀 수 있는 캐럴 14곡을 공개했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문제는 캐럴이 사라진 건 상인들의 저작권비에 대한 부담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작권법 시행령 제 11조와 6일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르면 50㎡(약 15평) 미만의 가게 즉 소규모로 운영하는 점포는 아예 저작권료 납부 대상이 아니다. 작은 규모의 매장을 운영하는 영세업자는 캐럴을 틀 때 저작권에 대한 생각을 안해도 된다는 얘기다. 또한 50㎡ 초과한다고 해도 모두 저작권료를 내는 것은 아니다.
음악저작권 공연사용료 징수규정 개정안/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음악저작권 공연사용료 징수규정 개정안/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일부 업종의 가게들만 저작권료를 낸다. 커피전문점과 생맥주 전문점, 기타 주점, 골프장과 춤 교습소, 헬스장과 에어로빅장과 목욕탕은 영상을 상영하는 경우 등이 해당된다. 반면 일반음식점, 의류 및 화장품 판매점, 전통시장, 빵집 등은 저작권 납부 대상이 아니기에 모든 음악을 자유롭게 틀어도 된다. 또한 어느 정도 크기의 매장을 운영하지 않는 이상 저작권료는 크게 부담되지 않는 선에 측정돼있다. 문체부 자료에 따르면 주점 및 음료점업이 내야하는 저작권료는 보상금까지 합쳐서 월 4000원~2만원 사이다. 백화점, 쇼핑센터, 대형맡, 호텔 등은 이미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있기에 캐럴 트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무료로 캐럴을 공개했지만서도 도통 길거리선 캐럴이 들리지가 않는다. 상인들이 캐럴을 틀지 않는 이유가 단지 저작권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만은 아니어서다. 점주들이 캐럴을 트는 이유는 매장의 캐럴 소리가 상점 밖에 있는 손님에게 들리게끔 해 사람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하기 위해서다. 자신이 틀은 캐럴이 길거리에서 들리게 하기 위해선 매장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매장 안에서 노래를 틀어 밖까지 들리게 하거나 혹은 매장 밖에 옥외 스피커를 설치하는 것이다.
2019 서울크리스마스 페스티벌 개막을 하루 앞둔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 설치된 대형 트리가 불을 밝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19 서울크리스마스 페스티벌 개막을 하루 앞둔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 설치된 대형 트리가 불을 밝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다만 두 방식 모두 현실적으로 업주가 이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우선 매장 내에서 노래를 틀어 길거리까지 들리게 하려면 내부 온도 조절을 위해 난방장치 등을 켜놓은 채로 매장의 문을 열어놔야 한다. 다만 상인들은 겨울에 매장 문을 열어놓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면서 에너지 규제 정책을 강화해서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겨울에 전력피크 예상 기간에 '문 열고 난방 영업'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예정이라 밝혔다. 지난 28일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전력 공급은 가장 추운 날에도 11% 이상의 예비율을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옥외에 스피커를 두고 캐럴을 틀자니 생활 소음규제기준이 걸린다. '소음진동관리법'에 따르면 주거지역 등에 확성기를 옥외에 설치할 경우 주간에는 65dB을 넘으면 안 되고, 야간에는 60dB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공부할 때 집중이 잘 되기 위해 트는 백색소음이 50~70dB 수준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보통 일상 대화 소리가 60dB 정도 수준이라고 한다. 일반 상점들은 사람들이 캐럴이 들리게끔 길거리서 크게 노랫 소리를 킬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점주들은 매장 내에서 캐럴을 크게 틀기도 쉽지 않고, 밖에서 캐럴을 틀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서 두꺼운 옷을 입은 시민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사진=연합뉴스
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서 두꺼운 옷을 입은 시민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길거리서 캐럴이 들리지 않는 건 캐럴에 대한 인기 자체가 식어서라는 분석도 있다. 서울시 중구의 한 개인 커피점에서 근무하는 박지수(27)씨는 "밖에다 캐럴 튼다고 손님들이 딱히 많이 올 것 같지 않다"고 전했다. 작은 패션잡화 매장을 운영하는 정모씨(52)는 "매장 음악은 인기차트만 위주로 튼다. 연말이라고 딱히 캐럴을 틀 생각은 해본 적 없다"며 "가요 중에서도 겨울 분위기에 걸맞은 노래들이 이미 많이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실제로 14일 기준 각종 음원차트를 둘러봐도 최상위권에 캐럴이 있는 경우는 없었다.
11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학생들이 성금을 자선냄비에 넣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1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학생들이 성금을 자선냄비에 넣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캐럴 14곡을 무료로 공개한다고 해서 거리에서 캐럴이 많이 들리지는 않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에 어울릴 법한 노래들은 트렌디한 면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캐럴은 그런 측면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캐럴이 젊은이들이 즐기기에 다양한 장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크리스마스에는 연말연시를 맞아 소외계층을 되돌아보고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것 등이 중요하다. 그런데 문화적인 수단으로써, 방법으로써 캐럴이 이를 진정 돕는 지에 대해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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