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 회식 자료사진=게티이미지
술자리 회식 자료사진=게티이미지
송년회 철을 앞두고 소주와 위스키 등 증류주들이 '순한 맛' 경쟁에 나섰다.

폭탄주 등 독한 술을 돌려 마시던 예전 송년 회식문화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서다. 독한 술을 꺼리는 현재 주소비층인 MZ세대(1980년부터 2004년생까지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부터 2004년 출생자를 뜻하는 Z세대를 합친 합성어)의 입맛에 맞추는 전략이다.

27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소주시장에서 다시 저도 경쟁의 불을 댕긴 건 시장 1위 하이트진로다. 올 4월 뉴트로(새로움+복고·Newtro) 감성을 더했지만 도수는 16.9도짜리 '진로이즈백'을 내놔 돌풍을 일으켰다.
사진 = 롯데주류 제공
사진 = 롯데주류 제공
롯데주류도 이에 대응해 주력제품인 '처음처럼'의 알코올도수를 17도에서 16.9도로 낮춰 이날부터 선보였다. 무학의 '좋은데이'와 부산·경남지역에서 파는 참이슬 등이 있지만 전국구 소주 제품의 알코올 도수가 16도 대로 내려간 것은 처음이라고 롯데주류는 전했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소주를 가볍게 즐기며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꾸준히 증가하는 저도화 트렌드에 따라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16.9도로 내렸다"고 설명했다. 처음처럼의 대표 속성인 ‘부드러움’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한편, 브랜드 로고를 포함한 디자인 요소를 젊은 느낌으로 개편했다고 전했다.
사진=진로이즈백 포스터, 하이트진로 제공
사진=진로이즈백 포스터, 하이트진로 제공
도수 하락으로 처음처럼 역시 진로이즈백과 같이 지상파 TV 광고를 집행할 수 있게 됐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알코올도수가 17도가 넘는 술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 사이에 지상파TV에서 광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로이즈백이 초기 공격적으로 TV광고를 집행할 수 있던 이유다.

2000년대 들어 롯데주류와 하이트진로가 소주 도수 낮추기 경쟁을 이어가면서 결국 주력제품이 16도대로 순해지게 됐다. 1924년 첫 출시된 소주인 '진로'의 알코올 도수가 35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알코올도수가 절반보다 더 옅어진 셈이다.

경북·대구지역 대표 주류사 금복주 역시 다음달 2일 알코올도수 16.9도짜리 '소주왕 금복주'를 출시한다. 뉴트로 유행을 반영해 투명한 병에 브랜드 캐릭터인 '복영감'을 중앙에 넣어 선보였다.

위스키 시장에서도 저도주 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시장 1위 골든블루는 지난 10월 알콜도수 35도 '팬텀'의 라인업 강화를 위해 모던 프리미엄 위스키 '팬텀 리저브'를 선보였다. 36.5도 저도 위스키 '골든블루'로 시장의 지각 변동을 일으킨 데 이어 한층 도수를 낮춘 저알콜 위스키로 승부하고 있다. 롯데주류도 지난해 7월 부드러운 맛을 강조한 17년산 위스키 '에스코트 바이 스카치블루'를 선보인 후 꾸준히 밀고 있다.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발렌타인은 브랜드 첫 싱글 몰트 12년산 제품을 선보이며 위스키 애호가뿐 아니라 입문자 공략에 나섰다. 2년 만의 신제품인 '발렌타인 싱글 몰트 글렌버기 12년'은 2017년 내놓은 몰트 위스키인 글렌버기 15년, 밀튼더프 15년, 글렌토커스 15년 이후 첫 신제품이자 브랜드 첫번째 12년산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과 2030세대의 주류 문화가 바뀐 결과로 풀이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쫓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부어라 마셔라’ 식의 전통적인 회식 문화가 사라진 점 등이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최근 몇 년 새 술자리에서 마시는 음주량은 눈에 띄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2018년 주류소비 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남녀의 월평균 음주 빈도는 2014년 8.4회에서 지난해 8.8회로 증가했다. 그러나 하루 평균 음주량은 2014년 8.3잔에서 6.3잔으로 떨어졌다. 특히 3잔 이하(41.4%)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젊은 소비자들이 주력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주류업계에서도 대응을 위해 저도주를 내놓는 등 고심하고 있다"며 "송년회철이 돌아왔지만 ‘소맥(소주+맥주)’을 강권하는 회식은 줄어드는 분위기인 만큼 트렌드에 편승하기 위한 주류업계의 고민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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