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졸업 후 책을 손에서 놓다시피 한 회사원 최모씨(37)는 새해 들어 완전 딴사람이 됐다. ‘책 50권 읽기’를 올해 목표로 세우더니 벌써 2권째 읽었다. 출퇴근 길이나 짬이 날 때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보기 시작했다. 기존 전자책 다운로드 서비스였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최근 전자책 서비스 업체들이 앞다퉈 내놓은 ‘무제한 정액제’에 가입하면서 책 읽는 맛과 그 속도감에 푹 빠져든 효과가 컸다. 최씨는 “통신회사의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와 비슷하다”며 “한 달에 1만원도 안 들이고 수십 권을 볼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고 전했다.

전자책 콘텐츠 제공업체 간 ‘무제한 서비스’ 경쟁이 10년째 지지부진했던 국내 전자책 시장의 불씨를 살리고 있다. 무제한 정액제는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특정 범위 내의 책을 권수와 횟수에 관계없이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서비스다.

기존에는 전자책을 각각 ‘다운로드’해 봤다면 무제한 정액제는 ‘스트리밍’으로 보는 식이다. 이용자로선 관련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책을 읽는 방식이나 느낌이 별반 다를 바 없다. 음원이나 영상처럼 책도 스트리밍으로 읽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무제한 月정액제 경쟁…전자책도 스트리밍으로 골라 본다
무제한 서비스에 시장 활기

전자책 유통업체 ‘밀리의 서재’는 2017년 9월 국내 최초로 월정액 서비스를 선보였다. 지난해 7월엔 ‘한 달에 10권’이란 제한을 풀었다. 월 9900원을 내면 도서 2만5000여 권 중 골라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리디북스도 비슷한 시기에 월정액 서비스 ‘리디셀렉트’를 내놨다. 가격은 6500원. 독자들이 꼭 읽기 원하는 책만 추렸다는 점이 특징. 리디북스 평점 4.0 이상의 ‘검증된 양서’ 2600여 권을 서비스한다. 인터넷서점 예스24는 지난해 11월 월 5500원의 ‘55요금제’와 월 7700원의 ‘77요금제’ 중 선택할 수 있는 북클럽으로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국내 최대 서점 교보문고도 다음달부터 월정액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독서 후진국’ 꼬리표 뗄까

서비스 출시 경쟁에서 시작된 전자책 시장의 활기는 독서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전망이다. 미국 퓨리서치가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독서 습관 조사에 따르면 전자책을 읽은 적 있는 사람들의 평균 독서량은 한 해 24권이었다. 전자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15권으로 그 수량이 훨씬 적었다. 전자책을 읽은 사람 중 88%는 최근 1년간 종이책도 함께 읽었다.

한국의 성인 독서율은 1994년 86.8%에서 2017년 59.9%로 하락했다.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중호 한국출판콘텐츠 대표는 “장르 문학뿐 아니라 실용서 등으로 전자책 판매가 늘면서 독자들의 취향이 다양화되고 있는 점이 독서율 제고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산업통계에 따르면 국내 전자책 제작 시장(연매출 기준)은 2014년 2272억원에서 2016년 2925억원으로 28.7% 늘었다. 전자책 서비스 시장은 같은 기간 1549억원에서 2152억원으로 38.9% 증가했다. 이런 성장에도 불구하고 전자책 시장 규모는 출판산업 전체(20조7659억원)의 2.4%에 불과하다. 세계 전자책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자책이 전체 출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23%, 영국 15%, 일본은 14%에 이른다.

“종이책의 70% 이상 커버해야”

국내 전자책 시장 확대의 걸림돌은 부족한 콘텐츠였다. 국내 출판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종이책의 전자책 변환 비율은 평균 59%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인터넷서점 관계자는 “종이책 출간 후 한 달 이내에 약 30%의 신간이 전자책으로 나오는 수준”이라며 “전자책을 함께 출간하면 종이책이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출판사가 아직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업계는 전자책 전환 비율이 70~80%는 돼야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전자책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전자책 정가는 종이책 가격의 70~80% 수준. 거의 절반 가격에 전자책을 판매하는 영미권에 비해선 비싼 편이다. 이 문제는 월정액 서비스로 넘을 수 있다. 공병훈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콘텐츠 사용자들은 플랫폼에서 일정 기간 사용하는 월정액 서비스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전자책, 무엇으로 어떻게 볼까

전자책을 보기 위해 반드시 별도의 단말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인터넷 서점이나 전자책 서비스 사이트, 앱을 통해 전자책을 구입한 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컴퓨터로 볼 수 있다. 다만 스마트폰은 오랜 시간 보기에 너무 작고, 컴퓨터는 노트북이라도 들고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불편함이 있다. 두가지 단점을 모두 보완할 수 있는 태블릿PC의 경우 전자책 단말기에 비해 전력소모가 크고 눈의 피로도가 높은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국내 대표적인 단말기는 전자책 전문업체인 리디북스의 ‘페이퍼’, 인터넷 전문서점 예스24의 자회사 한국이퍼브가 만든 ‘크레마’다. 예스24는 2017년 10월 ‘크레마 그랑데’를 내놨다. 당시로서는 전자잉크(e-ink) 전자책 단말기 중 가장 큰 6.8인치 화면을 앞세웠다. 책 한권보다 가벼운 210g 무게에 8.9㎜의 얇은 디자인도 강점이었다.

다음달 리디북스는 ‘페이퍼 프로’로 반격에 나선다. 2015년 출시돼 큰 인기를 끌었던 페이퍼 1세대의 후속작으로 화면을 7.8인치로 늘렸다. 7.7㎜로 두께를 줄였지만 화면이 커 무게는 250g으로 크레마 그랑데보다 무겁다. 2시간 충전으로 최대 30일 동안 대기 상태가 지속될 만큼 배터리 사용시간을 늘렸다. 두 제품 모두 8GB 기본 내장 메모리를 갖고 있고 가격은 20만원대다.

예스24는 지난해 5월엔 ‘크레마 엑스퍼트’를 출시했다. 10.3인치 대형 화면에 메모를 하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스타일러스 펜’ 방식을 도입해 눈길을 끌었다. 저장 용량은 32GB으로 키웠다. 가격은 40만원대로 올라갔다.

영어 원서 책을 자주 본다면 아마존의 단말기인 킨들 페이퍼 화이트도 고려해볼만 하다. 국내 단말기에 못지 않은 해상도에 10만원대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강점이다. 영어책은 아마존에서 구매하고 한글로 된 책은 구글북스 등 다른 채널을 통해 구매해서 읽을 수 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