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 수집을 취미로 하다 피규어 작가 겸 완구 유통업체 가이아코퍼레이션 차장으로 일하고 있는 엄대용 씨(오른쪽)가 경기 고양시 가이아코퍼레이션 사무실에서 한경 이우상 기자에게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피규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피규어 수집을 취미로 하다 피규어 작가 겸 완구 유통업체 가이아코퍼레이션 차장으로 일하고 있는 엄대용 씨(오른쪽)가 경기 고양시 가이아코퍼레이션 사무실에서 한경 이우상 기자에게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피규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솔직히 피규어는 내 취미가 아니다. “넌 왜 그걸 취미로 삼지 않느냐”고 부장이 물었다. 나 참, 거기 ‘왜’라는 질문이 왜 나오는지 이해불가다. 속으로 외쳤다. ‘안 당기니까 그렇지.’ 그리고 점잖게 답해줬다. “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요.”

그래도 피규어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관심 대상이었다. 그들이 취미를 갖게 된 이유, 어마어마한 유통의 세계, 그리고 와이프를 속이는 테크닉까지.

오늘의 주제는 피규어다. 한 사람의 얘기로 시작한다. 엄대용 가이아코퍼레이션 차장(42)이다.

어릴 적 못 가진 장난감이 취미로

엄 차장은 피규어 마니아들 사이에서 본명보다 ‘댄디버드’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하다. 그는 소위 ‘잘나가는’ 피규어 작가다. 피규어가 좋아 아예 피규어를 직접 만드는 일이 직업이 됐다. 핫토이 등 외산 피규어를 수입·유통하는 완구업체 가이아코퍼레이션이 지난 7월 그를 영입했다. 롯데렌탈 ‘묘미’에서 지난달부터 렌털을 시작한 99만원짜리 로봇태권브이 피규어도 엄 차장의 작품이다. 피규어를 직업으로 삼은 그는 이 취미를 위해 얼마를 썼을까. “7000만원 정도 쓴 걸로 아내는 알고 있어요”라며 음흉스럽게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혼 당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에게 물었다. 왜 사람들이 피규어를 모으냐고. 그는 “피규어를 모으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다들 비슷한 얘기들을 해요. 어릴 적에 갖고 싶었는데 결국 갖지 못한 장난감이 하나둘씩은 있다는 거지요”라고 답했다.

그는 어렸을 적 옆집 형이 출장을 다녀온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은 장난감 로봇 ‘초합금 철인28호’가 몹시 갖고 싶었다. 부모님은 사주지 않았고 시간이 흘렀다.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먼저 구입한 피규어는 당연히 초합금 철인 28호. 그는 ‘추억의 피규어를 살 때’가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고 했다. “여기서 사람들이 두 가지 부류로 나뉘더라고요. 구매 후 ‘이걸 왜 샀지’라며 후회하는 부류와 반대로 다른 피규어를 더 사서 모으기 시작하는 부류죠.” 그는 당연히 후자였다. “만약 구매를 후회했다면 그건 어릴 적 꿈에 대한 배신”이라고 했다.

그는 피규어를 무턱대고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보통 관련 상품 위주로 ‘새끼를 친다’.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 빠졌다면 ‘아이언맨’을 구입한 뒤에 다른 버전의 아이언맨을 추가로 구입하거나 아니면 그 옆에 장식할 ‘토르’나 ‘캡틴아메리카’를 구입하는 식이다. 등장하는 시리즈가 전혀 다른 배트맨이나 슈퍼맨으로 갑자기 돌아서지는 않는다는 얘기였다.
철인 28호·어벤져스 시리즈…"얼마 썼냐고요? 아내한테는 비밀이죠"
가장 좋아하는 것만 모아라

많은 사람들은 피규어 수집이 정말로 큰돈이 드는 취미인지 궁금해한다. 엄 차장의 대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였다. 무언가를 구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돈이 들지만 계획과 방향에 따라 적은 돈으로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레고마니아들이 레고 레스토랑, 레고 극장 등 수십만원대 대형 건축물에 열광할 때 레고 자동차를 모았다. 가격은 절반도 안 될 정도로 싸고 구하기도 쉬웠다. 꼭 비싼 피규어를 모아야만 만족감이 큰 건 아니라고 했다.

카테고리를 좁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다른 피규어 마니아인 ‘리스’(닉네임)는 “스타워즈를 좋아한다면 루크 스카이워커, 다스 베이더 등 주요 등장인물 피규어를 모을 것인지, 아니면 밀레니엄 팔콘 등 우주선에 주력할 것인지를 선택해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우주선 중에서도 연합군(선역)과 제국군(악역) 중 한쪽을 골라 모으는 것으로,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수집품을 고르는 안목도 빼놓을 수 없다. 엄 차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카테고리 내에서도 구하기 힘들거나 가치가 있는 피규어를 선택한다고 했다. 그가 갖고 있는 ‘다크나이트 배트맨’ 피규어(4 대 1 비율)는 2012년 출시된 이후 곧장 단종된 제품이다. 악역 조커 배역을 맡았던 영화배우 히스 레저가 사망하면서 주인공이었던 크리스천 베일이 더 이상 피규어를 만들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당시 56만원을 주고 샀지만 지금 판다면 150만원은 거뜬히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피규어도 결국 수집품을 모으는 취미인 만큼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오르는 작품 위주로 모으는 게 당연하겠죠.”

‘피규어 덕후’가 레스토랑을 차린 이유

피규어를 수집하는 취미의 종착역은 ‘전시공간 부족’이다. 피규어를 구입하는 데 필요한 ‘총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둘 곳이 없어 수집을 멈추게 된다는 것. 엄 차장도 결혼할 때 아내에게 공간에 대해 미리 선전포고를 했다. 안방은 피규어의 방이라고. 이 덕분에 엄 차장과 부인은 안방 대신 작은 방에서 잔다. “내가 남편이랑 사는 건지 피규어랑 사는 건지 모르겠다.” 엄 차장 부인의 말이다.

수집품을 전시할 공간은 더 이상 없는데 계속 피규어를 사고 싶다면 선택지는 결국 두 개다. 수집품 중 일부를 정리하거나 공간을 늘리거나. 엄 차장이 선택한 것은 수집품 중 일부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단 이때는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고 한다. “한두 개씩 ‘감질나게’ 정리해서는 이빨 하나가 빠진 것처럼 허전해서 안 돼요. 그 시리즈 전체를 정리해야 상실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요.”

반대로 공간을 늘리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엄 차장은 “한 지인이 피규어를 수집하는 데 8억원을 썼다. 피규어를 전시할 곳을 늘리기 위해 대형 레스토랑을 차렸다. 피규어를 사는 것으로도 모자라 도색을 고치는 등 ‘커스터마이징’을 하는 것까지 11억원 정도를 쓴 사람도 레스토랑을 냈다”며 웃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