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갤러리 현대 구관을 찾은 관람객이 이성자 화백의 1965년 작 ‘오작교’를 감상하고 있다.
9일 서울 갤러리 현대 구관을 찾은 관람객이 이성자 화백의 1965년 작 ‘오작교’를 감상하고 있다.
“땅을 잘 가꿔야 좋은 나무가 올라오듯 나는 그렇게 그림을 그렸어요. 내 작업은 아이들에게 음식을 주고 교육을 하는 것과 같지요. 그림이 완성되면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되는 것이니까요.”

한국 추상화단을 이끈 이성자 화백(1918~2009)이 1960년대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의 작은 다락방에서 작업하며 자주 하던 말이다. 1951년 6·25전쟁 당시 서른셋의 나이로 파리로 건너간 이 화백은 1958년 라라뱅시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파리 화단에 본격 입성했다. 모더니스트 앙리 고에츠를 만나 구상에서 추상미술로 지평을 넓힌 그는 죽을 각오로 매일 16시간 이상 작업에 매달렸다. 고국에 두고 온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듯 고국의 대지와 생명의 근원으로서 여성성, 음과 양의 세계를 화폭에 촘촘히 새긴 그의 열정은 이제 한국 현대미술의 비옥한 토양이 됐다.

지난 6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 구관(현대화랑)에서 개막한 ‘이성자 화백 탄생 100주년-추상회화 1957~1968’전은 이 화백의 이런 1960년대 열정적인 삶과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자리다. 다음달 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어머니가 지식을 길러내는 듯한 마음으로 대지와 여성, 도시를 채색한 유작 40여 점을 걸었다. 1957년부터 10여 년간 파리에서 느낀 자연의 생명력을 비롯해 고국의 산천, 자식 사랑, 향수, 영원성 등 수많은 의미와 해석을 담아낸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다.

◆파리 화단도 감동한 1960년대 추상화

1950년대 말 추상미술로 방향을 튼 이 화백은 동양과 서양의 간극을 넘는 것에 화업을 바쳤다. 이국땅에서 자신의 삶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는 창(窓)으로 만들고자 했고, 슬픔과 우울 같은 ‘마음의 지옥’조차 그림으로 토해내고 싶었다. 수만 개 색색의 점과 선을 빌려 대상을 단조롭게 재구성해 색이 섞이면서 선과 형태, 전체 색조가 드러나게 한 그의 화법은 파리 화단을 놀라게 했다. 해외 미술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동양적인 유산에서 나온 오묘한 성격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양미술의 흐름에 합류하는 본보기’라고 격찬했다. 생테즈갤러리, 샤르팡티에갤러리 등 파리 유명 화랑에서도 그의 추상화를 잇달아 소개하며 단번에 인기 작가 대열에 올라섰다.

◆대지와 여성을 응축한 오묘한 미학

실제 전시장에는 1960년대 추상화들이 다채로운 색깔로 에너지를 뿜어낸다. 1965년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열린 귀국전에 출품한 ‘오작교’가 대표적이다. 파리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의 오묘함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고국 사람과의 인연을 색점으로 묘사했다. 형태를 생략해 초현실적인 미감이 느껴진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빌려온 1961년 작 ‘천년의 고가’도 걸렸다. 우리 민족의 화풍을 국제 화단에 알리려는 염원을 담은 작품이다. 수많은 색채를 화면에 수놓은 뒤 맨 아래 여러 개의 선을 그려 넣어 ‘세계를 넘보는 한국 건축물’을 형상화했다.

고향 진주의 산과 들을 향한 그리움을 색채와 형태로 풀어낸 작품들도 시원한 눈맛을 터준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 주는 ‘대지’와 ‘달빛 속의 들판’, 모성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 주는 ‘내가 아는 어머니’ 등이 그것이다.

실존의 부조리를 부여잡고 통곡하는 동시대 미학의 자폐적 우울증에서 벗어나 환희에 찬 미학을 추구한 ‘소용돌이 속에서’, 삶과 예술이 일치하는 조화로운 세계를 완성한 ‘갑작스러운 규칙’ 등도 유려한 색점들이 서로 아우르며 충만함과 무한함을 선사한다.

도형태 갤러리 현대 대표는 “이 화백의 1960년대 ‘여성과 대지’ 시리즈는 김환기의 1970년대 점화처럼 한국적 서정이 깃들어 있다”며 “음악으로 치면 ‘절대 음악’ 같았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