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부총리(오른쪽 두 번째)가 청년 농부들과 대화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오른쪽 두 번째)가 청년 농부들과 대화하고 있다.
폭염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달 중순, 경기 양평군 옥천면에 자리 잡은 가을향기농장. 마당을 빼곡히 채운 400여 개 항아리에선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이 익어가고 있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황토집 세 채가 마주 보고 서 있는 아담한 농장. 공방 겸 식당으로 쓰이는 황토집 한 채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10여 명의 사람으로 북적였다.

농장 입구에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도착했다. 옅은 푸른색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 차림을 한 남성이 내렸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마중 나온 박애경 농장 대표와 두 손을 맞잡으며 인사한 그는 익숙한 듯 항아리 사이를 가로질러 식당으로 향했다.

이날 모임은 현장에서 일하는 젊은 농부들의 어려움과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 농업의 가능성 등을 듣기 위해 마련된 김 부총리의 비공식 일정이었다. 김 부총리를 포함해 13명의 참석자가 식탁에 둘러앉자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김 부총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청계천 판잣집에서 살며 외할머니, 홀어머니, 세 동생을 책임져야만 했던 소년 가장으로서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김 부총리가 어린 시절 얘기를 털어놓자 농민들 눈빛이 달라졌다. 일부는 김 부총리의 치열했던 삶을 알고 있는 듯했으나 처음 듣고 놀라는 참석자들이 더 많았다. 참석자들도 얘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전남 구례 지리산 자락에서 고로쇠 된장을 만들어 파는 김미선 피아골마을 대표(33)가 먼저 나섰다. 2011년 구례군 내동리에서 발효식품가공업인 피아골식품을 차린 그는 같은 해부터 마을 이장도 맡고 있다. “우리 마을은 지리산에 오는 관광객 덕분에 먹고사는 마을이었습니다. 식당과 민박집을 많이 운영했죠.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관광객 수가 줄어들고 주민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사이가 나빠졌습니다. 주민들끼리 말도 안 하고 지낼 정도였어요. 20대인 저한테 이장을 맡아달라고 한 것도 젊은 사람이 중간에 왔다 갔다 하면서 화해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문이었어요.”

김 부총리가 물었다. “이장을 맡은 뒤 주민들이 다시 친해졌나요.” 작은 산골마을도 살림살이가 힘들어지면 갈등이 심해지는 건 나라 경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다행히 많이 화해했어요. 된장만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와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구성했어요. 된장도 만들고, 산나물도 캘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에요.”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피아골식품의 2016년 매출은 5억원을 넘어섰다. 같은 해 체험관광을 위해 피아골을 찾은 관광객은 2만여 명으로 2013년에 비해 두 배가량 늘었다.

경북 문경에서 부모님과 함께 오미자 농사를 지으며 체험농장을 운영하는 이소희 소담 대표는 농업과 농촌의 치유의 힘에 대해 설명했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김 부총리는 “원래는 청년 농부들의 고민을 듣기 위해 왔는데 젊은 여러분이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농업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오히려 제가 더 힐링을 받고 간다”고 말했다.

양평=FARM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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