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 비잔틴제국 시절에는 동방 정교회 대성당이었다가 오스만튀르크 시기에는 모스크로 사용됐다. 그동안 두 차례 무너지기도 했던 아야 소피아는 1935년에 박물관으로 다시 개장했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 비잔틴제국 시절에는 동방 정교회 대성당이었다가 오스만튀르크 시기에는 모스크로 사용됐다. 그동안 두 차례 무너지기도 했던 아야 소피아는 1935년에 박물관으로 다시 개장했다.
아시아와 유럽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터키는 동양과 서양의 문물이 오가는 통로였다.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불리는 터키 땅의 주인은 그동안 수차례 바뀌었고, 그만큼 많은 역사와 얘기를 간직하고 있다. 어느 곳을 파든지 다양한 문명의 유물이 나온다고 말할 정도다. 수도 앙카라나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이 아니라 지방의 소도시를 가더라도 수많은 스토리를 읽을 수 있다. 온천의 도시 아피온(Afyon)과 장미 향기가 그윽한 이스파르타(Isparta)도 그 가운데 하나다.
미다스의 신화가 깃들어 있는 아피온성
미다스의 신화가 깃들어 있는 아피온성
미다스 신화를 간직한 아피온城

아피온카라히사르(이하 아피온)는 터키 서부에 있는 주(州)로 앙카라에서 남서쪽으로 25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카라히사르는 터키어로 성(castle)을 뜻하는데, 아피온 시내 한가운데 솟아 있는 바위산에 세워진 아피온성이 그대로 이 지역의 이름이 됐다. 언덕 위 226m 높이에 세워진 아피온성은 기원전(BC) 2000년 무렵 이 땅을 지배하던 히타이트 제국이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570여 개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독일 밴드 엘로이(Eloy)가 1974년 발표한 노래 ‘공중의 성(Castle in the air)’의 강렬한 비트처럼 심장이 쿵쾅거린다. 꼭대기에 다다르면 노랫말처럼 세상의 지혜를 가득 담은 듯한 현지인 노인이 힘들게 올라오는 관광객에게 반가운 미소를 짓는다.

성에서는 주거지와 성벽 등을 볼 수 있으며, 가장 높은 곳에는 터키 국기가 걸려 있다. 성벽에 올라서면 아피온 시내는 물론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다. 뛰어난 전망을 자랑하는 덕분인지 이곳은 동로마제국 오스만튀르크 등 문명이 바뀔 때마다 감시탑과 군사 주둔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곳의 역대 주인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 신화에도 나오는 프리기아. 아피온을 중심으로 발달한 프리기아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유명한 고르디우스와 그의 아들이자 ‘황금손’ ‘당나귀 귀’로 유명한 미다스 등 많은 왕을 배출했다. 손을 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어버렸던 미다스는 아피온성을 개축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아피온에는 이들 프리기아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묘지도 있다.

[여행의 향기] 미다스의 손길 닿은 '공중의 城'을 찾다
아피온은 또한 몽골에 밀려 서쪽으로 이주하던 셀주크 튀르크인들이 처음 정착한 곳이자 무스타파 케말이 터키 독립운동을 시작한 곳이다. 터키의 국부(國父)를 뜻하는 ‘아타튀르크’로 불리는 케말은 오스만제국 멸망 이후 터키를 점령하던 유럽 세력과 아피온에서 첫 전투를 벌여 21일 동안 항쟁을 이어갔다고 한다. 아피온에는 독립전쟁기념관도 있으며 시청 앞 광장에는 당시의 투쟁을 상징하는 동상이 서 있다. 벌거벗은 몸으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동상을 바라보면 멀리 아피온성의 모습과 겹쳐지며 터키인의 용맹을 떠올리게 된다.

아피온은 ‘아편’의 어원이 된 도시기도 하다. 아피온주 들판에는 하얀 양귀비꽃을 재배하는 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아편은 아프가니스탄이 원산지라고 하는데 BC 2200년부터 아피온에서도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꽃의 진액으로 진통제인 모르핀을 생산하는 공장이 아프가니스탄과 아피온에 한 곳씩 있다는 설명이다. 터키 정부가 재배농가를 3주 단위로 검사하는 등 엄격히 관리하고 있지만, 누구나 꽃밭에 접근이 가능하며 양귀비 군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물론 진액을 채취하거나 먹으면 마약사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아피온에 있는 아로마테라픽 파크를 방문하면 양귀비 재배 현황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식물원에서는 양귀비뿐 아니라 페퍼민트, 각종 아로마향 식물 등 50여 종을 연구하고 있으며 관광객 누구나 둘러볼 수 있다. 언덕에 계단식으로 조성된 밭을 둘러보는 길은 산책코스로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양귀비의 씨는 마약 성분이 없고 혈압을 낮춰주는 효능이 있어 과자를 만들 때 넣는다고 한다. ‘미다스가 손을 대면 변했다는 황금이 혹시 아편은 아닐까’ 산책하는 동안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온천을 활용한 ‘水치료’ 관심

아피온은 온천 도시로도 유명하다. 무스타파 투툴마즈 아피온주지사는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온천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가 아피온”이라며 “온천관광이 시작된 지 10년이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2만 명이 온천 관광을 위해 아피온을 찾았으며 그 가운데 20%는 외국인이라는 설명이다.
[여행의 향기] 미다스의 손길 닿은 '공중의 城'을 찾다
아피온에는 5성급 호텔이 10여 곳 있으며 4성급을 포함하면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아피온 유일의 코자테페(높은 꼭대기라는 뜻)대학과 연계해 온천을 활용한 수(水)치료를 하고 있다. 수치료 요법은 120여 년 전 독일에서 시작한 것으로 온천을 활용해 신경통 류머티즘관절염 등을 완화하는 자연요법이다.

아피온의 온천호텔들은 저마다 특색을 자랑한다. 5성급도 1인당 최저 390리라(약 9만3000원), 2인 580리라(13만8000원) 이상이면 숙박과 함께 다양한 온천욕과 수영장을 즐길 수 있으며, 아침과 저녁도 뷔페식으로 제공된다. 마사지는 시간당 최저 150리라(3만6000원)여서 전체적으로 가성비가 꽤 좋은 편이다. 퀴타히아 지역의 예쁜 도자기를 파는 NG호텔, 2000명을 수용하는 연회장을 갖춘 아크로네스호텔, 히말라야산에서 가져온 소금 등 50개의 사우나룸을 갖춘 익발호텔, 머드팩이 유명한 산드클르호텔, 물리치료사와 정형외과 의사 등이 있어 수치료 및 간단한 수술까지 가능한 메이호텔 등이 대표적인 호텔이다.

아피온은 또한 콘야와 함께 터키 이슬람의 신비주의(메블라나) 종파가 발달한 곳이다. 메블라나 잘랄레딘 루미(1207~1273)가 창시한 이슬람 수피 교단 중 하나로 하얀 옷을 입고 끊임없이 빙빙 도는 춤(세마)으로도 유명하다.

장미축제로 떠들썩한 이스파르타

터키 중서부의 이스파르타는 장미로 유명한 곳이다. 세계 장미오일의 65%를 이곳에서 생산한다고 한다. 매년 5월20일께 장미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장미가 일찍 펴 지난 11~15일 행사가 열렸다. 페스티벌 개막식에서 만난 유수프 지야 귀나이든 이스파르타 시장은 “올해는 처음으로 국제행사로 장미축제를 마련했다”며 “세계가 ‘장미’ 하면 이스파르타를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장미따기 체험행사를 하고 있는 터키인 가족.
장미따기 체험행사를 하고 있는 터키인 가족.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각종 퍼레이드. 사라센 무사 복장을 한 터키 군인들의 행렬에 이어 터키 각 지역의 전통복장을 한 젊은 남녀의 춤,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 인근 국가의 전통 옷차림 행렬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는 소방차는 물 대신 장미꽃잎을 주위에 흩뿌려 분위기를 띄운다. 대로변에 세워진 가설점포에서는 향수 비누 등 장미를 활용한 제품과 각종 수공예품 등을 판매한다. 많은 터키인이 한류의 영향인지 한국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라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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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르타 주정부 청사 앞 광장에는 뮤슈트자데 귈주 이스마일 에펜디라는 사람의 동상이 서 있다. 1870년 불가리아의 장미 꽃씨를 지팡이 속에 숨겨 이스파르타로 갖고 온 ‘터키판 문익점’이다. 동서양 교류의 창구 역할을 해온 터키는 ‘원조’를 주장하지 않는다. 아편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해졌고 장미는 불가리아에서 갖고 왔지만 자신들의 상품으로 만든 것을 자랑한다. 이스파르타에는 6개 협동조합이 2만5000㏊에서 장미를 재배하고 있으며, 하루 320t의 장미꽃잎을 따다 장미오일과 장미수를 제조한다. 4t의 장미꽃잎으로 1㎏의 장미오일을 만드는데, ㎏당 4만7000리라(약 1116만원)에 향수 등 화장품 원료로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수출한다. 축제에 참가해 장미로 제조한 향수, 비누, 핸드크림 등을 판매하는 업체만 35곳에 달한다.

이스파르타 인근 ‘아르드츨르 쿄유’ 마을에서는 장미꽃 따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장미가 있는 시골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곳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장미를 수확한다. 해가 뜨기 전 이슬을 머금은 장미꽃잎이 장미오일을 만들기에 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분홍빛 장미 꽃봉오리 바로 밑 줄기를 힘줘 당기면 쉽게 끊어지지만 잘 안 되면 손톱으로 잘라야 한다. 장미를 따 바구니에 담아야 하지만 머리에 꽂거나 입에 물고 사진을 찍는 등 놀이에 열중하는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호수 옆 터키 전통방식의 천막에서 시금치, 아편씨 등이 들어간 터키식 피자로 아침을 먹은 뒤 바로 옆 부뚜막에서 장미오일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커다란 통에 물과 장미를 넣어 끓인 뒤 위로 올라오는 증기를 얇은 관에 통과시켜 차가운 물로 식힌다. 우리의 전통 소주를 제조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그렇게 해서 모여진 용액을 잠시 놔두면 가벼워 위로 뜬 부분이 장미오일, 아래는 장미수가 된다.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위해 1.5m 높이의 증류시설을 보여주고 있지만 인근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장미오일을 제조한다고 한다.

에이르디르 호수의 장엄함

이스파르타에서 30㎞ 떨어진 곳에 있는 에이르디르(Egirdir) 호수는 서울의 80%에 달하는 482㎢ 면적을 자랑한다. 1200m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호수는 장엄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구름이 잔뜩 끼면 검게, 태양만 가득하면 파랗게, 구름이 살짝 섞이면 비취색을 보이는 물빛깔이 압권이다. 전망대 카페에서는 커다란 주전자로 터키식 홍차 ‘차이’를 테이블마다 직접 끓여준다. 호수 주변에도 아기자기한 카페가 많이 있지만 호수 가운데 작은 섬 예실에 있는 터키 전통음식점이 가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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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메모

한국에서 터키 남서부에 있는 아피온과 이스파르타로 바로 가는 직항 항공편은 없다. 이스탄불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아피온은 인근 퀴타히아공항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며 온천호텔에서 제공하는 픽업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스파르타는 비행기로 이스탄불에서 1시간10분 정도 걸린다. 이스파르타에서 에이르디르 호수까지는 편도 12리라(약 2700원)인 미니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시내에서 아크피나 전망대까지는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편도 20리라(약 4500원) 정도다. 아르드츨르 코유 마을에서 장미따기 체험행사를 하려면 현지 여행사를 이용해야 한다.

아피온·이스파르타=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