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차 '흑돼지 아빠'… 無名의 지리산 흑돼지 有名하게 키우다
“20년 넘게 함양에서 흑돼지를 키웠어요. 그런데 내가 키운 돼지가 내 브랜드로 나가지 못했어요. 대구, 전북, 경북 등 멀리서 유통하는 사람들이 가져가서 자기 브랜드로 팔았지요.”

경남 함양의 흑돼지 브랜드인 까매요의 박영식 대표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농사 짓는 사람이 유통까지 하는 건 사실 쉽지 않아요. 계속 망설였죠.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대표의 농장엔 흑돼지 6000여 마리가 자란다. 직접 세운 종돈장에서부터 혈통 관리를 해온 돼지들이다. 함양군 유림면 지리산 자락에 있는 ‘복있는 농장’에 들어서자 흑돼지들이 큰소리를 내며 몰려 다녔다. 새까만 털에선 윤기가 흘렀다. 복있는 농장은 흑돼지 전문 브랜드 까매요의 터전이다. 새끼 돼지가 크는 축사(비육사), 새끼를 낳는 축사(분만사), 어미돼지 축사(종돈사) 등으로 나눠 관리한다. 성장 상태에 맞춰 사료를 공급하고 온도 관리도 따로 한다.

25년차 '흑돼지 아빠'… 無名의 지리산 흑돼지 有名하게 키우다
이 농장에서 자라는 흑돼지는 두 종으로 나뉜다. 박 대표가 미국에서 종돈을 수입해 번식시킨 버크셔, 또 토종 재래돼지를 교배해 새롭게 개발한 우리흑돈이다. 박 대표는 흑돼지만 25년가량 키워온 축산 농민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농장을 운영했고 2016년부터는 까매요란 브랜드를 만들어 삼겹살, 목살, 전지살 같은 돼지고기와 이를 가공한 소시지, 양념육 등을 팔고 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07년 신지식농업인, 작년엔 축산분야 최고농업기술명인으로 각각 선정됐다. 한마디로 ‘한국의 흑돼지 대부’다.

“사람들은 흑돼지 하면 제주도를 많이 생각하는데 사실 국산 흑돼지의 60% 정도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함양, 산청, 남원 등에서 생산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흑돼지에 익숙했어요. 농가에서 한두 마리씩 섞어 키웠거든요.”

함양 토박이인 박 대표는 1978년 연암대에 입학해 축산을 전공했다. 젊은 시절 함양 축협에서 16년간 근무했다. 이때 얻은 지식과 현장 경험으로 이후 삶은 흑돼지와 함께하고 있다. “사실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농장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가진 돈이 없다 보니 직장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기회가 있어 1000마리 정도 규모로 흑돼지를 키우기 시작했지요.”

당시 함양에서 흑돼지만을 전문적으로 키운 것은 박 대표가 처음이었다. 그전까진 백돼지를 키울 때 몇 마리씩 섞어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흑돼지는 백돼지에 비해 어미 돼지가 한 번에 낳는 새끼 수가 적고 성장 속도도 느린 편이다. 백돼지는 태어난 지 175일가량에 출하되는 데 비해 흑돼지는 195~210일 정도 키워야 한다. 한국 전체 양돈시장에서 흑돼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

그는 그럼에도 왜 흑돼지를 선택했을까. “흑돼지를 먹어본 사람은 압니다. 맛 경쟁력이 뛰어납니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찾는 소비자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유율이 2%가 되든 3%가 되든 저는 무조건 흑돼지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날까지 백돼지는 한 마리도 길러본 적이 없어요.”

박 대표는 국내 흑돼지 품종 관리에 기여한 축산농업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처음엔 그도 다른 농가들처럼 교잡종을 들여왔지만 키우다 보니 혈통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 미국에 가서 혈통 증명서가 있는 버크셔 20마리를 농장에 들여왔다. 거기서 번식시키면서 돼지의 조부, 조모, 외조부, 외조모 등을 모두 기록했다. 박 대표의 농장은 한국종축개량협회에서 ‘흑돼지종돈장 1호’로 지정했다. 이후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재래돼지 품종인 우리흑돈도 먼저 도입했다. 지금 박 대표 농장의 어미돼지는 600여 마리에 달한다.

박 대표는 자신 있게 내놓는 고기지만 판로가 충분하지 않은 게 아쉽다고 말한다. “지금은 농장 돼지를 까매요 브랜드로 다 팔지 못하고 40% 정도만 합니다. 앞으로 까매요 브랜드로 100% 출하하는 게 제 목표예요.”

그는 까매요 제품을 살 수 있는 판매장과 흑돼지 체험장을 함양군의 명물 상림숲 옆에 꾸몄다. 체험관에선 돈가스 만들기, 소시지 만들기 체험을 하고 요리 레시피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5000여 명의 체험객이 다녀갔다.

박 대표는 그동안 쌓아온 축산 노하우를 아프리카에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아프리카 국가인 레소토왕국에서 양돈기술을 전수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논의 중이다. “아프리카를 가봤는데 우리나라 1970년대 같아요. 한국 농업이 굉장히 빠르게 발전한 건데 그 경험이 아프리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양=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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