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는 올레가 한창 유행했을 때였습니다. 제주 한림읍에 사는 친구가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올레꾼들이 일제히 차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이었습니다. 차에 무슨 문제가 있나? 친구는 궁금해서 차 주변을 살피는데 올레꾼 중 한 사람이 “왜 신성한 올레길을 차로 다니느냐?”며 미숙한 사람 취급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올레길을 걷는 것도 아니고 자기 집을 가는데 걸어가든 차를 타고 가든 무슨 상관이냐?”고 하자 변명하지 말고 다음부터는 걸어서 다니라고 했답니다. 친구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자기 집을 차로 가든 걸어서 가든 왜 올레꾼들이 이래라저래라하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차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친구는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려와서 제주가 제 모습을 잃고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때가 2012년도였습니다. 한 해 들어오는 국내외 관광객 수만 해도 968만 명이었습니다. 2013년도에는 1000만 명을 넘어서더니 지난해에는 무려 1475만 명입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유커라고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이 대폭 줄었는데도 5년 전보다 거의 50% 가까이 관광객이 늘었습니다. (2016년에는 1585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년 제주 풍경이 바뀌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선 10년 전만 해도 없던 교통체증이 일상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의 온도] 제발, 나가주세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널리 소개된 맛집과 카페는 최소 1~2시간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바다가 예쁜 구좌읍 해변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조차 없습니다. 차가 쌩쌩거리며 달리는 길에서 셀카를 찍는 사람들을 보면 아찔하기까지 합니다.

차라리 이런 장면은 애교스럽기까지 합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대거 몰려들면서 제주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졌습니다. 일부 관광객이 벌이는 추태를 보면서 여행문화가 미성숙했던 과거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현상을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라고 합니다.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뜻하는 오버(over)와 ‘여행’을 뜻하는 투어리즘(tourism)이 결합된 말로 우리 말로 ‘과잉관광’쯤으로 해석될 것입니다.

오버투어리즘은 사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는 시민들이 나서서 ‘관광객들은 집으로 돌아가라’ ‘관광객들은 테러리스트’라는 거친 문구를 내걸고 격렬하게 시위를 벌입니다. 인구 160만 명의 바르셀로나에 한 해 몰려드는 관광객만 무려 3200만 명입니다. 바르셀로나 인구의 20배가 넘습니다.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습니다. 넘치는 쓰레기에 교통체증은 물론이고 범죄율까지 증가했습니다. 호텔 신축이 늘면서 부동산 가격도 올랐습니다. 바르셀로나 시당국은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도심지역에 호텔 신축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세웠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세계적인 휴양지 보라카이를 폐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보라카이를 찾는 관광객 수만 매년 2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수년 전부터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몰려와 하수와 쓰레기가 섬의 환경을 치명적으로 위협해 왔습니다. 환경 전문가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보라카이 바다가 가축분뇨나 생활하수가 흘러들어와 생기는 부영양화가 심각한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보라카이섬을 ‘시궁창(cesspool)’이라고 부르며 관광지 폐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반고흐미술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안네 프랑크의 집 등 관광명소에서는 관광객의 뒤통수만 보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네덜란드는 심지어 입국하는 관광객에게 관광세를 물릴 정도입니다.

오버투어리즘 현상을 보면서 부탄 사람들이 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탄은 별도로 관광객 수를 제한하지는 않지만 일시적으로 관광객이 몰리는 시기에는 입국 허가 인원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모든 여행객에게 환경부담금이라는 이름으로 하루 200달러(비수기)~250달러(성수기)를 부과합니다.

우리가 여행하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자님의 말씀처럼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내딛는 발걸음이 다른 사람에게는 민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행을 떠나는 발걸음이 여행지의 사람들 속으로 스며드는 여행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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