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서 백제 최고위층 석실묘 50기 무더기 출토
경기 하남시 감일동에서 한성도읍기 백제의 최고위층 돌방무덤(석실묘)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22일 하남시와 하남역사박물관에 따르면 고려문화재연구원이 2015년 11월부터 발굴조사 중인 하남 감일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 부지에서 한성도읍기인 4세기 중반에서 5세기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횡혈식 석실분(굴식 돌방무덤) 50기가 확인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백제 횡혈식 석실분은 70여 기로, 서울 인근에서 이처럼 많은 백제 석실분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곳 석실분들은 경사면에 땅을 파서 직사각형 묘광(墓壙·무덤구덩이)을 만들고 바닥을 다진 뒤 평평하고 길쭉한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구조다. 흙을 얇은 판 모양으로 켜켜이 다져 올리는 판축기법을 썼고, 천장은 점차 좁아지도록 만들었다. 무덤 크기는 묘광이 세로 330∼670㎝, 가로 230∼420㎝이고 석실은 세로 240∼300㎝, 가로 170∼220㎝, 높이는 180㎝ 내외다. 무덤 간 거리는 약 10∼20m다.

석실분에서는 아가리가 곧고 어깨가 넓은 항아리인 직구광견호(直口廣肩壺), 중국에서 만든 청자 계수호(鷄首壺·닭머리가 달린 항아리), 부뚜막형 토기 2점 등도 출토돼 이곳이 왕족과 귀족 등 최고위층 집단무덤임을 보여준다.

문재범 하남역사박물관장은 “백제 무덤은 신라 무덤에 비해 부장품이 많지 않다”며 “공주 수촌리 유적에서 흑유(흑색 유약) 계수호가 나온 적은 있지만, 국내에서 청자 계수호가 발굴되기는 최초다. 사각뿔에 동그란 구멍을 뚫은 것 같은 부뚜막형 토기도 처음 출토됐다”고 설명했다. 문 관장은 “당시 청자는 중국에서만 만들 수 있었고, 부뚜막형 토기를 무덤에 묻는 풍습도 중국에 있었다”며 “백제가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문 관장은 이어 “일부 무덤은 두 번 이상 사용한 흔적이 있다”며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했다가 시간이 흐른 뒤 안쪽으로 밀어 넣고 또다시 장례를 치른 것 같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석실분의 상태가 매우 양호한 데다 백제 유물만 나온 점, 100년 안팎의 기간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점, 왕성과 가까운 곳에서 대규모 고분군이 확인된 점 등에 주목하고 있다.

감일동 석실분들은 백제 왕성임이 확실시되는 서울 풍납토성(사적 제11호)에서 약 4㎞, 몽촌토성이나 방이동 고분군과는 약 3㎞ 떨어진 곳에 있다. 한성도읍기 백제의 왕릉급 무덤으로 추정되는 서울 석촌동과 가락동, 방이동 일대 고분군이 도시 개발 과정에서 대부분 파괴된 터라 당시 백제 건축문화와 생활상, 국제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