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
3년 전 겨울, 한국이 낳은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이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봐야 했던 한 서울시향 수석연주자가 있었다. 그가 3년 만에 일본 도쿄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종신 수석단원이 돼 고국 무대에 선다. 클라리넷 연주자 조성호(33) 이야기다.

조성호는 오는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체임버홀에서 독주회를 연다. 곡은 브람스 클라리넷 소나타 1·2번 전곡이다. 브람스는 무겁고 중후한 느낌의 곡을 많이 지은 작곡가다. 그의 클라리넷 소나타 역시 기교나 음악적 표현이 어려워 연주자들에겐 꼭 넘어야 할 높은 산 같은 곡이다.

3년 만의 국내 리사이틀에서 브람스 곡을 선택한 것에 대해 조성호는 “노년의 브람스가 젊은 클라리네티스트 연주를 듣고 감흥을 얻어 작곡한 곡”이라며 “좀 더 정열적이고 다이내믹하게 연주해야 하는 곡이기 때문에 더 나이 들기 전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성호는 지난 3년간 큰 변화를 겪었다. 안정된 서울시향 단원 생활을 하다가 해외 무대에 노크한 지 9개월 만인 2016년 8월 도쿄필 클라리넷 오디션에 합격했다. 일본 최고(最古) 오케스트라인 도쿄필은 1911년 창단된 이후 NHK교향악단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악단으로 성장했다.

그가 입단했던 2016년은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때였다. 20년 만의 단원 선발 소식에 당시 일본인 경쟁자만 200여 명에 달했다. “대한민국 연주자의 ‘피’가 더 낫지 않으냐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일본도 앙상블을 잘하지만 한국 사람만이 가진 음악성에 대한 장점을 보여주려고 애썼던 거죠. 합주도 좋지만 솔리스틱(독주 같은 느낌)한 느낌을 좋아하는 제 스타일대로 승부했습니다.”

차별화 시도 때문이었을까. 1년여간의 수습 단원 생활을 마친 그는 지난 12월 동료들의 투표로 도쿄필의 종신 클라리네티스트가 됐다.

그곳에서 재회한 지휘자 정명훈 이야기도 꺼냈다. 2001년 특별고문으로 취임한 후 지금까지 도쿄필과 인연을 맺어 온 정명훈은 조성호가 입단한 다음달인 9월 도쿄필 최초로 명예음악감독에 취임했다.

“3년 전 서울시향 오디션에서 저를 뽑아주신 분이죠. 타국 일본에서 다시 만났다는 게 뭔가 운명 같았어요. 신기했죠.”

주위에선 비슷한 시기에 이어진 그와 정명훈의 도쿄필 합류에 대해 오해의 시선도 있었다. “(정명훈이) 데려온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전혀 아닙니다. 최근에도 연주가 있을 때나 오가면서 인사를 나누는 정도인데요. 선생님은 제게 어려운 분이죠.”

조성호는 2009년 미국 줄리아드 음대와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에 모두 합격해 ‘클라리넷 천재’라는 말까지 들었다. 정작 그는 스스로 ‘천재’와는 거리가 멀다고 고개를 저었다. “오스트리아 빈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2위를 했지만 남들보다는 다소 늦은 나이였어요. 천재는 아니죠. 엄청난 노력파도 아니에요. 죽기 살기로 악기에만 빠져 살지 않은 게 오히려 클라리넷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동기가 된 거 같아요.”

조성호는 이번 독주회 후 자신이 주도하는 목관 5중주 팀 뷔에르앙상블과 매달 국내 협연 활동을 할 계획이다. 한국과 일본을 매달 왕복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그의 꿈은 도쿄필에만 머물러있지 않다.

“도쿄필보다 좋은 오케스트라에서 초대장을 보낸다면 또 과감히 도전할 거에요. 종신 단원이 된 것과 상관없어요.”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