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숭동 CJ아지트 대학로점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
서울 동숭동 CJ아지트 대학로점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
한 명은 징 박힌 가죽 재킷에 큼직한 군화를, 다른 한 명은 베이지색 코트에 하얀색 운동화를 신었다. 한 명은 욕을 밥 먹듯이 하고, 다른 한 명은 쭈뼛대는 소심한 성격이다. 이들은 과거 학교에서 ‘일진(불량청소년)’과 ‘샌님’으로 만나 알게 된 사이다. 불청객이 불쑥 날아들며 이들을 한데 섞는다. 그 불청객은 바로 죽음이다. 샌님은 불치병에 걸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두고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일진은 이 모습을 보고 “삶이 의미 없다”고 여기며 되는 대로 살았던 자신을 반성한다. 둘은 어느 새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친구가 된다.

오는 18일까지 서울 동숭동 CJ아지트 대학로점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마이 버킷리스트’ 내용이다. 지난달 24일 개막한 이 공연은 최근 국내 공연계에서 수출 콘텐츠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2월 일본 도쿄 공연을 성사시켰고 8월에는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에도 불구하고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잇따라 무대에 올랐다. 올해도 지난달 도쿄에서 공연한 데 이어 오는 21일 상하이에서 막을 올린다. 이 공연을 만든 (주)라이브는 최근 중국 영화감독 왕자웨이의 투자도 받았다. 국내 공연은 이번이 네 번째로, 뮤지컬 애호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팬층이 점차 두텁게 형성되고 있다.

이 작품은 두 청년의 끈끈한 우정을 다룬 브로맨스(형제를 뜻하는 영어단어 ‘brother’와 연애를 뜻하는 ‘romance’를 합쳐 만든 신조어) 뮤지컬이다. 불치병에 걸린 ‘해기’는 죽기 전에 자신의 버킷리스트(하고 싶은 일 목록)를 최대한 많이 실행하기 위해 소년원에서 막 나온 ‘강구’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강구는 시간당 3만원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수락한다. 해기가 강구를 고른 이유는 ‘자기가 죽어도 절대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강구는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반항적인 성격과 비관적인 인생관을 갖게 된 청년이다. 그러나 해기의 영향으로 생각을 달리 갖는다. 두 인물 간 대화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2인 극’이다.

무대 연출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세련미가 있다. 청년들이 주인공인 만큼 철조망, 벽에 덕지덕지 붙은 포스터, 공사장을 연상시키는 철판 울타리 등으로 도심 뒷골목 같은 느낌을 살렸다.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가 반복적이고 단순해 귀에 금세 익숙해진다. 무대 중앙의 밴드가 전기기타, 드럼 등으로 넘버의 반주를 넣는 것도 특징이다. 소극장에서 밴드 음악을 듣다 보니 인디음악 공연장 같은 느낌도 든다. 이런 연출이 극의 스토리와 어우러져 ‘청춘 드라마’ 느낌을 자아낸다. 주제에 상투적인 교훈을 전달하려는 계몽적인 의도가 있는 것에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