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 홈런~
김재환 홈런~
삼성그룹 계열사 과장으로 근무하는 김모씨(36)는 두산베어스의 광팬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큰맘 먹고 월차를 썼다.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두산과 기아타이거즈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시즌 초반 부진하던 두산이 후반기부터 승승장구하며 1위 기아를 턱밑까지 추격하자 원정경기 관람에 나선 것. 이런 상황에 대비해 그는 월차도 아껴 쓰는 습관이 생겼다.

왕복 KTX 비용과 식비 등 하루에 20만원 정도 지출되지만 개의치 않는다. 1위 추격에 큰 공을 세우고 있는 박건우 선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한 벌 더 장만했다. 갖고 있는 두산 유니폼만 10벌이 넘는다. 1년에 야구에 쏟아붓는 돈만 수백만원. 연초에는 100만원짜리 시즌권을 구매한다. 여기에 10만원 정도 되는 신상 유니폼, 모자, 휴대폰 케이스 등도 시시때때로 사들인다.

김씨는 “좋아하는 취미를 즐겁게 즐기려는 것이기 때문에 아깝지 않다”며 “명품백이나 비싼 브랜드 의류에 목매는 친구들에 비하면 저렴한 취미활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Life & Hobby] 야생야사… 골드미스가 떴다
김씨처럼 30대 골드미스들이 야구에 빠졌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직장 내 연차가 쌓이면서 시간 여유가 생기고 금전적으로도 여력이 생긴 것이다. 또 그전에 이렇다 할 취미 활동을 하지 않던 여성도 야구장을 가본 뒤 그 매력에 푹 빠져들기 시작한다.

골드미스는 구단 입장에서 VIP 고객으로 꼽힌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 따르면 야구팬 가운데 42.9%가 여성이다. 30대 여성은 특히 상품 구입 등 야구 관련 소비에서 남성이나 다른 연령대 여성보다 적극적이다. 야구 관련상품 구입 경험이 있는 30대 여성 비율은 87.7%로 성별과 연령별로 구분한 응답자 분류 중 가장 높았다.

30대 여성 직장인이 야구에 빠지는 계기는 다양하다. 남자친구나 남사친(남자 사람친구)의 제안에 호기심으로 야구장에 갔다가, 집에서 아빠 오빠가 틀어놓은 야구 중계를 보면서 흥미를 느끼게 된 경우가 많다. 삼성라이온즈의 한 여성팬은 “남자친구가 삼성 광팬이라 억지로 끌려다니다 야구팬이 됐다”며 “남자친구랑은 오래전에 헤어졌지만 야구는 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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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마다 다양한 계기가 있지만 업계에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한 때를 프로야구에 여성팬이 대거 유입된 시점으로 꼽는다. 야구가 국가적인 이벤트가 되면서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TV로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했고 야구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는 것이다.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가 있지만 왜 상대적으로 야구에 열광하는 여성이 더 많을까. 이유는 대략 세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한국 야구 특유의 놀이문화다. 미국 프로야구 중계를 보면 관중석은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항상 조용하다. 그러나 국내 프로야구장은 개인적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항상 들썩거린다. 외국과 달리 선수마다 응원곡이 따로 있다. 해당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맞춤 제작한 응원가를 부른다. 롯데자이언츠 홈구장인 부산 사직야구장은 ‘사직노래방’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응원하면서 술을 마시고, 춤추고, 소리도 지른다. 롯데 팬인 10년차 직장인 서윤지 씨는 “푸른 잔디가 깔린 탁 트인 야구장을 보면서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면 가슴이 뻥 뚫리고 쌓인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이라며 “당연히 이기는 게 좋지만 설령 이기지 못한다고 해도 꽤 신나게 즐기다 온다”고 했다.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취미활동으로도 자리잡았다. 야구는 시즌이 펼쳐지는 8개월여간 월요일만 빼고 항상 경기를 한다. 경기를 기다리고 시청하고 못 본 장면은 다시보기를 하며 즐거워하거나 아쉬워하는 것 자체가 즐길 거리라는 것이다.

야구장을 찾는 젊은 남녀가 늘면서 야구가 사교 매개체로 작동하기도 한다. 네이버에서 두산베어스와 LG트윈스 관련 카페는 각각 30여 개(회원 수 100명 이상 기준)에 달한다. 소모임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활동하는 동호회도 많다. 동호회원들은 정기적으로 단체관람을 하고 거나하게 뒤풀이를 하며 친목을 다진다. LG트윈스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직장인 홍모씨는 “혼자 야구장에 가는 게 심심해 친구를 사귀려고 가입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취미가 비슷하다 보니 마음이 잘 맞아 결혼에 골인한 커플도 꽤 된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