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중국 '납면'을 '라멘'으로…세계인 입맛 잡은 일본
일본, 많이도 다녔다. 취재도 많았지만 다른 목적이 있었다. 국수! 면을 먹으러 갔다. 세계 3대 면의 고향이 있다. 한국을 빼면 이탈리아 중국 일본이다. 다양하기로는 중국이 최고다. 일본은 그 압축판으로 보면 된다. 한국의 면 문화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일본에 전해주기도 했다(원진스님이 일본의 소바, 즉 메밀국수를 전한 건 거의 정설이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 유럽의 면 문화를 흡수했다. 그리고 재빨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연구를 제일 많이 한다. 일본 서점에 가면 면 관련 책이 빼곡하다. 조리법을 다룬 건 물론이고 ‘연구서’도 많다. ‘월간우동’ ‘월간라멘’처럼 관련 잡지까지 있다. 디테일에 강한 일본의 특성을 말해준다.

라멘의 원조는 중국 ‘납면’

일본인들은 심야에 해장으로 라멘을 즐겨 먹는다.
일본인들은 심야에 해장으로 라멘을 즐겨 먹는다.
라멘은 원래 중국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인은 일본 것으로 안다. 중국이 사회주의의 길을 걸으며 폐쇄돼 있을 때 일본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중국어로 라?은 잘 몰라도, 일본어로 라멘은 국제어가 됐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 요리사가 라멘집을 하고 있었다. 제법 비슷한 맛이다. 이탈리아인이 줄을 섰다. 그는 영국에서 라멘을 배웠다고 한다. 영국은 일본 라멘이 뿌리를 내려버린 것이었다. 인스턴트 라면은 한국, 라멘은 일본이 최강자다. 중국은 라면의 본고장인데, 라면이란 이름으로 팔리지 않고 각종 면의 이름을 달고 있다. 참고로 라면이란 납면(拉麵) 즉 ‘잡아당긴 면’이라는 뜻이다. 납의 중국어 발음이 ‘라’이다.

라멘은 어지간히 먹었다. 일본 전역이 ‘라멘 공화국’이다. 라멘 잡지도 나온다. TV에는 새로운 라멘집을 발굴하는 프로그램도 방영한다. 지역마다 자기 고장 라멘이 최고라고 한다. 라멘 스타일도 가지각색이다. 먼저 규슈. 한국에서 제일 가까워서 한국인이 많이 가는 곳이다. 후쿠오카는 라멘 성지다. 라멘으로 먹고산다. 오직 라멘을 먹으러 세계의 관광객이 오는 경우도 있다. 부산 사람들은 당일치기로 라멘 먹고 온다는 말도 있다. 아침 비행기로 40분 날아가서 라멘만 먹고 40분간 비행하고 귀국하는 마니아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돈코츠라멘
돈코츠라멘
규슈의 라멘은 돈코츠. 돼지뼈라는 뜻이다. 후쿠오카의 나카쓰라는 포장마차촌이 유명하다. 시내를 관통하는 천변에 라멘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다. 후쿠오카 회사원과 노동자의 야식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면이 가늘다는 말도 있다. 규슈 라멘은 보통 소면처럼 가늘다. 포장마차는 화력이 아무래도 약하다. 굵은 면은 오래 걸린다.

예를 들어 두꺼운 우동은 10분 넘게 삶아야 한다. 1~2분이면 삶아 건져서 미리 준비한 육수에 말아낼 수 있다. 포장마차는 서서 먹기도 한다. 좌석이 적으니 앉더라도 회전이 생명이다. 그래서 빨리 말아낸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덜 익혀 먹는 문화가 생겼다. 면을 빨리 삶다 보니 덜 익은 경우가 있었다. 꼬들꼬들했다. 나름대로 맛있었다. 그래서 후쿠오카에는 마치 이탈리아의 ‘알 덴테’(설 익혀 먹는 방식)처럼 국수 익힘 주문이 따로 있다. ‘가타’라고 주문하면 엄청 설익은 국수를 준다.

나가사키 라멘이 짬뽕이 된 사연

    나가사키 짬뽕
나가사키 짬뽕
라멘은 원래 난징소바, 지나소바라고 불렀다. 1871년 청·일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많은 사람이 일본 땅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이 먼저 들어왔고, 나중에 들어온 이들 중에는 일반 노동자도 많았다. 중국은 세계 최고 노동자 송출국가였다. 미국에서 철도를 놓은 노동자들이 미국 내 중국 혈통의 원조다. 한국에도 인천으로 들어와서 짜장면을 퍼뜨렸다. 당연히 일본에도 면을 보급했다. 그들이 먹은 국수는 난징소바에서 다시 지나소바로, 다시 라멘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여기서 잠깐! 나가사키에도 중국인이 많이 갔다. 그들이 만든 것이 나가사키 라멘, 즉 나중에 짬뽕이 된다. 라멘과 짬뽕은 사촌이다. 구마모토에는 타이피엔이라는 짬뽕이 있는데, 이것도 중국 라멘의 사촌이다. 밀가루가 아니라 당면을 쓴다는 게 특이하다.

타이피엔
타이피엔
우동은 일본이 원조라고 알고 있다. 맞다. 물론 중국의 영향 아래 있는 국수였다. 이제는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에 지면서 더 발전했다. 무슨 소리냐고? 패전 후 미국은 일본을 지원한다. 중국과 북한의 공산화를 바라보면서 미국은 다급했다. 일본과 한국을 빨리

상화시켜서 자기 세력권의 교두보를 삼을 필요가 있었다. 국민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했다. 미국에서 남아도는 밀가루를 무상으로, 나중에는 싸게 공급했다. 이 때문에 우동이 크게 유행할 수 있었다. 가쓰오부시와 간장을 넣은 국물에 미국산 밀로 만든 면을 후루룩 먹고 일본은 재건에 나섰다.

  나가시소멘
나가시소멘
요즘은 일본산 밀(홋카이도 산이 많다)을 쓰는 고급 우동도 있지만, 여전히 미국과 호주산 수입 밀이 대세다. 값싸고 밀의 질이 괜찮다. 한국 밀가루 시장과 비슷하다. 한국도 미국 밀가루로 배를 채웠고, 전후 재건을 이룰 수 있었다.

발로 밟아서 탄력 높인 우동

우동은 라멘에 좀 밀리는 판세다. 라멘은 자극적인 고기와 뼈 국물에 말아내니 더 감칠맛이 있고 진하다. 우동은 소박하고 맛이 점잖다. 클래식하다. 라멘도 향수 음식이고, 솔푸드지만 우동도 그렇다. 요즘은 우동도 다양해지고 있다. 카레우동은 기본이요, 토마토소스 우동도 팔린다. 우동도 전국적인 개성이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누키 우동은 주코쿠 지방 우동이다. 면을 길게 자르고, 각이 져 있다. 발로 밟는 반죽이 유명하다. ‘족답’(足踏: 아시후미)’ 즉 발로 밟아서 탄력을 올리는 면이다. 쫄깃하다. 사누키 우동 중에서 다카마스 지방 우동은 더 특이하다. 길이 50㎝가 넘는 면을 씹지 않고 삼킨다. 목으로 먹는 면이라고 한다. 목넘김(노도고시)의 미학이라고 자랑한다. 한국인이 잘못 따라하다가는 큰일난다. 그냥 씹어먹어도 뭐라 안 한다.

  붕장어 국수
붕장어 국수
이 도시에 우동 먹으러 갔다가 재미있는 걸 알았다. 낮에 유명한 집에 갔더니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다. 낮에 안 하는 집이 있다니? 저녁에 갔더니 이미 손님이 꽉 찼다. 특이하게 간단한 안주에 술을 마신다. 그후에 우동을 먹고 일어선다. 우동집이 단순히 배 채우는 면 집이 아니라 선술집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라멘집은 해장하는 집이다. 점심에도 먹지만, 밤늦은 때 가는 게 정석이다. 특히 술 마신 회사원이 단골이다. 저녁 회식을 하고, 라멘집에 가서 맥주를 곁들여 2차나 3차를 한다. 배가 부른데도 맥주에 국물 있는 라멘이라니. 정말 독특한 풍습이다. 해보니 의외로 괜찮다. 다만 다음날 얼굴이 퉁퉁 붓는다는 부작용이 있다.

10만원 넘는 고급 소바도 있어

   소바
소바
일본 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소바다. 유명한 면만 따진다면 그 다음으로 우동-라멘(짬뽕 포함)-스파게티-냉면이다. 냉면은 한국이 전해줬다. 스파게티는 패전 후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냉면은 재일한국인이 퍼뜨렸다. 역시 전통은 소바다. 격식도 가장 강하다. 다른 면은 한 그릇에 1만원 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소바는 한 그릇에 3만원짜리도 흔하다. 메밀이 비싼 데다 어느 정도 고급이라는 인식이 있어서다. 수입 메밀로 만든 300엔짜리부터 3000엔짜리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고급 소바집은 300~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곳도 있다. 도쿄 아자부주반 지역에 있는 유명한 소바집에 가서 술 몇 잔을 곁들여 소바를 곱빼기로 먹었더니 두 사람에 10만원 나와서 놀란 적이 있다. 소바는 국물에 말아먹는 것과 우리가 잘아는 자루소바(모리소바라고도 한다) 스타일로 크게 나뉜다. 국물은 우동과 비슷하다. 가쓰오부시 같은 말린 생선과 간장으로 맛을 내고 면을 말아낸다. 자루소바는 진한 소스(쓰유)에 살짝 찍어먹는 게 제격이다. 도쿄가 소바의 원조라고 하지만, 일본 어디든 도쿄식 소바집이 널려 있다.

박찬일 셰프 chanil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