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기술에 중독된 상태…AI시대에도 수행 필요한 이유죠"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모든 정신적인 것을 컴퓨터에 이식시킬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어떤 과학자는 말했습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죽음이란 개념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존재 의미를 부식시키는 기술에 저항해야 합니다. 인공지능(AI)이 보편화되는 미래가 ‘인간 이후의 시대(Post-Human Era)’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말이죠.”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불교 스승으로 꼽히는 에브리데이 젠 공동체의 설립자인 노먼 피셔 상임법사(사진)의 말이다. 8일 서울 견지동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AI 시대에 선(禪) 수행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피셔 법사는 현대인의 일상 속에 불교의 선 사상을 적용하는 데 앞장서왔다. 1995년부터 5년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공동체인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의 주지를 맡았고, 구글 직원을 대상으로 한 명상 프로그램 ‘내면 검색(Search Inside Yourself)’을 만들어 ‘구글의 수도원장’으로 불린다. 선 수행을 서양문화에 맞게 실천, 전파하기 위해 에브리데이 젠 공동체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현대인은 기술에 중독돼 있습니다. 늘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 있죠.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성찰하지 않습니다.”

AI 시대에 수행이 필요한 이유도 ‘성찰’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행할 때 우리는 온 신경을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의 에너지’에 집중한다”며 “이 힘을 토대로 세상의 다른 존재들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능력은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훈련을 통해 자각하는 능력을 키운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휩쓸리고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공감과 이해력이 높아져 다른 사람과 더 잘 연결됩니다. 구글에서 이런 훈련을 중시하는 것도 새로운 아이디어는 늘 ‘팀워크’를 통해 나오기 때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일갈했다. “‘아메리카 퍼스트’가 아니라 ‘휴먼 퍼스트’를 외쳐야 할 때입니다.” 지난 7일 입국한 피셔 법사는 오는 21일까지 서울, 부산, 해남에서 강연·법회·수행 등에 참석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