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오페라 ‘루살카’의 연습 장면. 물의 요정 루살카가 왕자를 그리워하며 슬픈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는 28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오페라 ‘루살카’의 연습 장면. 물의 요정 루살카가 왕자를 그리워하며 슬픈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난 아무 매력 없다고요. 절반의 인간일 뿐….”

물의 요정 루살카가 쓰러진 채 절규한다. 사랑을 약속한 왕자의 마음은 금세 변해 버렸다. 루살카는 목소리를 높여 강렬한 슬픔을 노래한다. 이웃 나라 공주를 안고 있는 왕자를 멀리서 지켜보던 루살카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왕자는 루살카의 손을 뿌리친다. 그는 “네 손은 얼음 같아”라며 루살카의 손보다 더 차가운 음성으로 노래한다.

‘체코판 인어공주’로 불리는 오페라 ‘루살카’의 한 장면이다.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대표작 ‘루살카’가 국내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다. 국립오페라단은 오는 28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루살카’로 애절한 사랑의 향연을 펼친다.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세계로

루살카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체코 오페라다. 국내에서 체코 작품은 생소했다. 이색 공연을 찾는 세계 오페라 애호가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며 최근 국내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다른 오페라보다 멜로디가 다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작품이 많은 게 특징이다.

‘신세계로부터’ 등 교향악으로 주로 알려진 드보르자크는 오페라 11개를 작곡했다. ‘오페라의 대가’인 푸치니보다 많다. 루살카는 그중 열 번째 작품이자 대표작이다. 물의 요정 루살카가 왕자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인데 강렬한 사랑의 메시지, 풍성한 관현악 연주로 그의 오페라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루살카는 대중에게 익숙한 이야기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처럼 독일 작가 푸케의 소설 ‘운디네’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루살카는 호수를 찾은 왕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밤마다 달을 향해 기도한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아름답고 서정적인 아리아 ‘달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른다.

인간이 되는 조건으로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긴 루살카.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말을 할 수 없는 루살카에게 왕자는 곧 흥미를 잃고 만다. 요정도, 인간도 되지 못하고 버림받은 채 살던 루살카에게 왕자는 다시 찾아와 사랑을 고백한다. 둘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죽음의 키스를 나누고 호수로 뛰어든다.

◆상처 극복하는 여인의 성장

이 작품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게 국립오페라단의 설명이다.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이자 ‘루살카’ 연출을 맡은 김학민 감독은 “가장 대중적인 작품으로 가장 심오한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루살카는 모든 것이 불안한 상태에서 한 인간을 사랑하고, 이 때문에 인간과 사회로부터 상처받는다”며 “이를 극복해 나가는 한 여성의 성장담을 통해 세상 모든 여성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자연과 문명의 대립 및 결합의 의미까지 담았다. 루살카는 자연, 물, 생산을 나타내는 데 비해 왕자는 문명, 불, 파괴를 상징한다. 무대도 이에 맞게 변한다.

1막의 아름다운 호수가 2막에선 육중한 콘크리트 궁전으로 바뀐다. 3막은 물이 다 마르고 황폐해진 숲을 배경으로 한다. 인간의 문명이 자연을 파괴하는 과정과 같다. 여기에 치유의 의미를 더했다.

박동우 무대미술감독은 “마지막에 비를 내리는 장면을 더해 모든 상처가 회복되고 소생하는 과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루살카 역은 ‘라 보엠’ 등에서 활약한 소프라노 이윤아, ‘로엔그린’에 출연한 서선영이 맡았다. 왕자는 테너 김동원, 권재희가 연기한다. 김 감독은 스태프도 체코 출신 딕션코치인 레오나 펠레스코바를 제외하곤 전부 한국인으로 채웠다.

그는 “그동안 무늬만 한국 것이고 엔진은 전부 외국에서 수입해서 쓰는 자동차와 같은 무대가 많았다”며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균형을 맞춘 공연을 제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