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은 여러분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상상력은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입니다. 그리고 팀원들의 존경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칭송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

전 세계 27억달러의 흥행 신기록을 세운 3D영화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지난해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걱정이 많은 소년 시절을 보냈던 그는 관객들을 자신이 창조한,무시무시하거나 매혹적인 세계로 이끌고 끊임없이 길을 만들며 걸어왔다. '아바타'는 공중에 떠다니는 산들과 발광 생물로 가득한 열대우림,나비족이라 불리는 우아하고 훤칠한 키의 푸른 인간들의 미래 세상을 창조했다. '터미네이터2'는 2029년 기계들이 일으킨 끔찍한 전쟁을 보여줬고 '심연'에서는 촉수를 닮은 물기둥의 모습을 선보였다. '타이타닉'에서는 침몰하는 여객선을 현실로 불러내 아름다움과 두려움,상실감을 전했다. 그것은 그의 영화 속 미래의 정서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미래의 모습을 도식적으로 보여주기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스스로의 손으로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표현한다. '아바타'는 3m 키의 푸른 외계인이 사는 행성으로 떠나는 모험으로 위장했지만 사실 우리의 정신적,생태학적 자각을 요구하는 캐머런 식 호소였다. 캐머런은 우리의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미래는 밤의 어둠이 내린 고속도로와 같아서 우리 자신이 올바른 방향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임스 카메론 더 퓨처리스트》는 '창조의 거장' 캐머런 감독에 대한 평전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캐머런 감독의 협조를 얻어 평범한 트럭운전사에서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거듭난 비결을 탐색한다.

강렬한 호기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유년기부터 성장기의 재능과 특징,어른이 된 후 상상을 현실화해 성공하기까지 삶의 과정을 추적한다. 피터 잭슨과 아널드 슈워제네거 등 그의 사업 파트너들의 증언을 통해 그의 독창적인 삶과 영화,제작현장에서의 리더십도 곁들였다.

저자는 캐머런 감독이 지닌 창조성의 뿌리를 유년기에서 찾아낸다. 1962년 쿠바의 미사일 위기가 닥쳤을 때 여덟 살의 캐머런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안전한 세상에서 보호받으며 살고 있다는 믿음이 한낱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밤마다 담요를 뒤집어쓴 채 핵전쟁 등과 관련된 과학소설을 탐독했다. 숱한 종말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의 두려움을 심화시켰다. 돌이켜보면 "거의 편집증적이었다"고 그는 당시를 술회했다.

캐머런은 어른이 된 후 세상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의 모든 영화는 어린 시절 그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끔찍한 재앙에 대한 경고이자,인간성과 영혼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재앙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종의 가이드다.

그의 상상력의 또 다른 수원지는 탐험이다. 그는 '타이타닉'의 성공 이후 근 10년간 떠돌았다. 특히 장기간 심해 탐사에 나서 잠수정을 타고 41차례나 잠수했다. 심해 열수구에 사는 생명체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아바타'의 외계 생물을 디자인했다. 캐머런은 이렇게 말한다.

"탐험은 사치가 아닙니다. 탐험은 우리를 문명화된 존재로 규정합니다. 탐험을 통해 얻은 영감은 우리의 자아 이미지와 자신감,경제적 · 지정학적 위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

그는 무엇보다 상상력을 현실화할 줄 아는 기술을 겸비했다. 어린 시절부터 잠시도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을 정도로 장인 기질이 강했다. 뗏목이나 나무 위의 집,모형비행기 등을 직접 제작했다. 투석기를 만들어 바윗돌을 날리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예술적 기질을 물려주기 위해 박물관에 종종 데려갔다. 여기서 그는 미라 등을 열심히 스케치했다. 덕분에 그는 예술과 과학 등 양측에 깊은 조예를 갖췄다.

촬영현장에서 캐머런은 모든 일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마초적 성향이 강했다. '터미네이터'를 촬영할 때는 슈워제네거에게 스턴트 연기를 설명하면서 보호장비도 없이 직접 시연해 보인 일화는 유명하다. 슈워제네거는 "오토바이로 뛰어오르더니 속도를 높여 달리다가 180도 회전해서 멈추는 동작을 보여준 후 그렇게 해달라더군요.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