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실력을 갖춘 미디어 영상 · 설치 작가들이 미국 유럽 아시아 등 글로벌 미술시장 개척에 본격 나서고 있다. 김수자 이기봉 이불 최우람 정현두씨 등은 백남준의 후예답게 과학과 예술을 결합한 또 하나의 미디어 아트 장르를 선도하며 세계적인 작가들과 경쟁하고 있다. 국내외 화단에서는 이들의 전시가 줄을 잇고,국제적인 미술관과 화랑들의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경복궁 옆 옛 국군기무사령부 터에서 열리고 있는 '신호탄'전에 참여한 최우람씨(38)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선다. 지난해 영국 리버풀비엔날레에 초대받은 최씨는 내년 2월 미국 레시빌 프레스토뮤지움 초대전을 시작으로 뉴욕 비트폼갤러리 개인전(3월),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뮤지움 작품전(2011년 3~5월)을 차례로 열 계획이다. 그동안 최씨는 스스로를 '준과학자로서의 예술가'로 규정하며 정태적인 조각보다는 운동성이 있는 '기계 형태'의 조형 예술에 몰두해왔다. 그는 "내년 미국 무대에 사운드와 이미지,텍스트,영상을 통합적으로 구축한 작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한 양혜규씨(38)도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미국 워커아트센터에서 개인전(2010년 2월28일까지)을 갖고 있는 양씨는 런던과 프랑크푸르트,피츠버그,로스앤젤레스,빌바오 출품작을 모은 이번 전시회에서 글로벌 역량을 한층 더 발휘할 방침이다. 그는 알루미늄 블라인드,적외선 히터,환풍기,선풍기 등 일상의 오브제로 수수께기 같은 사진,영상,조각을 아우른 설치 작업으로 참신성을 인정받아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초대됐다.

뉴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씨(40)는 마술사 이은결씨의 공연 장면을 영상으로 시각화한 신작 '씨네 매지션'시리즈로 일본과 미국 시장을 동시에 '정조준'한다. '요코하마 페스티벌 2009'(오는 29일까지)와 뉴욕 '퍼포마 비엔날레 2009'(22일까지 · 아시아소사이어티 극장)에 참여한 정씨는 미술과 마술을 융합한 영상 작품으로 국제 시장을 뚫는다는 전략이다.

'예술전사' 이불씨(45)는 유럽 시장 선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카르티에 현대미술관 전시에 이어 내년 4월에는 벨기에 브르셀 보고싱앙 재단의 초청을 받고 대표작을 두루 보여주는 전시회를 연다. 내년 6월에는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하워드갤러리 초대전을 갖는다. 최근 현대 미술시장의 무게 중심이 뉴욕에서 런던 베를린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해외 화랑과 미술관,유명 재단들의 국내 작가 유치전도 치열하다.

설치 작가 김기라씨(35)는 일본 나고야 플러스 갤러리의 기획전 '모시모시'(25~12월25일),독일 보쿰 현대미술관의 기획전 '다른 유사성'(2010년 4월15일~5월15일)에 초대됐다.

다음 달 5일 개막하는 호주 브리스베인 아시아퍼시픽 트리엔날레에는 이기봉씨(52)와 함경아씨(43)가 나란히 초청을 받아 해외 작가들과 경쟁을 벌인다. 패션업체 에르메스는 설치 및 영상 작업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김수자씨(52)의 초대전을 내년 1월8일부터 서울 전시장에서 열 방침이다.

이 밖에 휴스턴미술관은 설치 작가 최정화 서도호 김홍석 김범씨 등 한국 작가 12명의 작품전을 '당신의 밝은 미래'라는 주제로 진행하고 있고,주한 독일학술교류처(DAAD)는 뉴욕 리만 머핀 갤러리 전속 작가인 서도호씨(45)를 레지던스 작가로 선발해 베를린 작업실을 지원하고 있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대표는 "과학과 예술을 결합한 미디어 아트가 국제 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새로운 공공미술 장르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며 "독특한 아이디어의 영상 설치 작품들은 향후 미술품 수출의 주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