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거북선을 실체론적 입장에서 보지 않고 관계론으로 생각의 틀을 바꾸면 새로운 사실들,진정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우리 문화 깊숙이 박혀 있는 상대성의 원리와 관계론적 사고의 틀로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라.'

'르네상스적 지식인'으로 불리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신작 《생각》에서 강조하는 말이다. '이어령창조학교'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그는 마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발상의 전환에 실패하는 현대인들을 안타까워하면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13가지 열쇠를 소개한다.

'당신은 정말 거북선을 아는가'라는 소제목이 붙은 9번째 생각은 '실체론에서 벗어나 관계론으로 생각의 틀을 바꾸면 새로운 사실이 보인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실제로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배우며 자랐지만 거북선과 싸운 일본 배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 저자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이 당시 판옥선을 재빨리 거북선으로 대체한 것은 카르타고와 싸운 로마 군대처럼 적군의 배에 올라타 해상 전투를 육상 전투로 바꾸고자 했던 일본 수군의 전략을 미리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우리말에 '나들이(나고 들어오는 것)'나 '빼닫이(빼고 닫는 서랍)' 등 쌍방향성을 내포한 말이 많은 것 역시 '관계론적 사고'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증거이지만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이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한다.

'국물문화의 포스트모던적 발상'도 이어령표 '생각의 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 음식의 특성은 국과 밥이 섞인 '탕'이다. 그는 '탕'을 밥과 국 한쪽에만 머물지 않는 탈(脫)코드적 음식이라고 부른다.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묶어 '음식(飮食)'이라고 부르고 젓가락과 수저를 겸용하는 등 탈코드적 음식 문화가 이렇게 강한 나라는 같은 동양 문화권에서도 드물다. 그에 반해 서구 문화에서 국물은 접시에 담을 수 없는 부수적 존재다. 정보기술로 보면,없애야 할 '노이즈(잡음)'다. 여기서 그는 "포스트모던적 발상으로 볼때 이런 노이즈는 꼭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마저도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여 다양하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존재"라고 강조한다.

'선비의 생각이 상(商)과 만나다'라는 13번째 생각의 열쇠는 책 한 권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아우른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정신과 문화가 현대의 시장경제와 만나면 현재의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정신,문화,선비,이 모든 것이 한국의 경제 속에 어우러져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인 '선비 자본주의' 나아가 '사 · 상(士 · 商) 자본주의'로 거듭태어날 때,한국 자본주의의 미래는 다시금 희망찬 항해를 계속할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낼 힘과 지혜를 우리의 머리와 가슴 속에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그가 첫 번째 생각의 열쇠로 꼽은 '흙과 디지털이 하나 되는 세상' 역시 오래 음미해볼 만하다. '흙'은 인간이 천천히 가꾸고 쌓아온 문화를 상징한다. 그가 제안한 '디지로그(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의 연장선에 있는 개념이다. 그는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하드 파워'에서 인간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 '소프트 파워'로 넘어갔으며,양쪽을 결합한 '스마트 파워'가 필요하다는 조지프 나이의 주장에 이어 '디지털 세상이 도래했지만 그럴수록 우리에겐 상대방의 문화나 그 인간의 마음을 읽는 소프트 콘텐츠에 관한 정보기술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