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가장 범죄가 많은 도시는 어딜까? 프랑스에서 가장 불친절한 도시는 또 어딜까? 그리고 프랑스에서 가장 인종적 갈등이 심한 도시는? 이런 여러 가지 오명을 한꺼번에 뒤집어쓴 이 도시는 다름 아닌 마르세유다. 그렇지만 이 도시는 프랑스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 중의 하나로도 손꼽힌다. 기차를 타건 승용차를 이용하건 마르세유 근처를 지나칠 때 어느 곳에서든 눈에 띄는 저 멀리 언덕 위에 우뚝 선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의 위용에 압도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르세유는 기원전 600년께 그리스인들이 이주해 와서 만든 항구도시로 로마시대에는 동방으로 향하는 통로 역할을 했고 19세기에는 산업혁명과 수에즈 운하 개통 그리고 프랑스의 알제리 점령 등에 힘입어 오랫동안 번영을 누렸다.

◆고질적 용수난

그러나 오늘의 마르세유가 있기까지는 물의 확보를 위한 처절한 역사가 있었다. 지중해에 면한 이 거대 도시의 주변엔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거주자들을 먹여 살릴 변변한 실개천 하나 없었다. 혹자는 저수지를 만들어 비가 올 때 비축했다가 갈수기에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건 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마르세유가 속한 프로방스 지방은 연평균 강우량이 600㎜도 채 안 되는 프랑스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이니 말이다. 인구가 적을 때는 그럭저럭 버틸 만했지만 19세기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생활용수는 물론이거니와 '물먹는 하마'인 증기기관차에 공급할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다.

마르세유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마르셀 파뇰은 자신의 소설 '마농의 샘'을 통해 프로방스 지방의 물을 둘러싼 오랜 갈등의 역사를 압축해놓았다. 우리에겐 동명의 영화로 잘 알려진 이 소설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사랑하던 이웃 여인 플로레트가 전쟁터에 간 사이 다른 남자와 결혼해 마을을 떠난 후 독신으로 살아가던 세자르 노인(이브 몽탕 분)에게 조카 위골랭(다니엘 오퇴유 분)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위골랭은 카네이션을 재배해 한몫 버는 것이 꿈이었는데 물이 없는 게 문제였다. 그러자 세자르는 조카와 공모,샘물이 있는 이웃 플로레트 소유의 땅을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은밀히 이곳의 샘물을 막아버린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플로레트의 꼽추 아들 장(제라르 드파르디유 분)은 이 땅에 눌러 앉기 위해 아내 에메,딸 마농을 데리고 이주해 온다. 그러나 농사를 지으려던 장은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고 고심 끝에 샘물을 찾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로 암반을 폭파하던 중 그만 사고로 숨진다. 슬픔을 뒤로 한 채 엄마와 함께 집을 떠나려던 어린 마농은 우연히 세자르와 위골랭이 막아 놓은 샘물을 다시 트는 장면을 목격하고 경악한다. 이후 에메는 마르세유로 나가 오페라 가수로 성공하지만 마농은 산에 숨어 염소를 치며 살아간다.

◆'마농의 샘' 물 둘러싼 갈등의 역사 압축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훌러 마농은 아리따운 처녀로 성장한다. 우연히 마농(엠마뉴엘 베아르 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 위골랭은 첫 눈에 반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에게 한을 품고 있던 마농은 싸늘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을로 흐르는 물의 근원을 발견한 그녀는 샘을 막아버린다. 마을에서는 한바탕 물소동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세자르와 위골랭의 음모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만다. 마을 교사 베르나르의 설득으로 샘은 다시 뚫리지만 마농의 사랑을 얻지 못한 위골랭은 목을 매 자살하고 혼자 남은 세자르는 장님이 된 옛 친구 델핀을 통해 꼽추 장이 옛 연인 플로레트와의 사이에서 난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마농은 물 때문에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었고 물 때문에 사랑하는 베르나르를 얻었다. 등장인물들은 물로 인해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다. 프로방스인에게 있어 물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는가를 이 소설은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 마르세유는 고질적인 물 부족 현상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결국 시의회는 묘책을 짜냈다. 마르세유 북쪽의 엑상프로방스를 지나는 뒤랑스 강(La Durance)과 시를 연결하는 운하를 파서 물에 대한 갈증을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1839년부터 1854년에 걸쳐 건설된 이 운하 덕분에 마르세유는 프랑스 제2의 도시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운하를 내는 것조차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운하가 지나는 길목에 위치한 마을마다 서로 물을 손쉽게 자기 땅에 갖다 대려고 온갖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결국 뒤랑스 강에서 직선으로 연결돼야 할 운하는 마치 술 취한 듯 지그재그로 게걸음하며 마르세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80㎞짜리 운하를 건설하는 데 무려 15년이나 걸린 것은 이런 지역이기주의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여튼 이 운하 덕분에 마르세유는 해묵은 물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뒤랑스 강 연결 운하 뚫어 물의 공포 벗어나

마르세유 사람들은 물의 여신의 축복을 누리기만 할 만큼 염치가 없지는 않았다. 그들은 물이 가져다 준 시의 번영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도시 북쪽의 언덕 위에 물의 궁전인 롱샹 궁전(Palais Longchamp)을 세웠다. 마르세유 역에서 동북쪽으로 약 500m 정도 걸어가면 이 화려하고 장대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거대한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듯한 이 대리석 건물은 마르세유에 물을 선물한 뒤랑스 강의 여신에게 바쳐진 기념비이다. 시의회가 에스페랑듀에게 의뢰하여 1869년 완공한 이 건물의 양 날개에는 현재 마르세유 미술관과 자연사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중앙의 개선문 아치 바로 아래에 있는 세 여신의 조각상 중 중앙이 뒤랑스 강을 상징하며 좌우의 두 여신은 뒤랑스 강으로 흘러드는 두 지류의 수호신이다.

그러나 위풍당당한 뒤랑스 여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착잡했다. 그렇게나 물을 갈구하던 불운한 꼽추 장의 절망적인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타들어가는 옥수수 밭을 바라보며 좌절하던 그가 마른하늘에 대고 외치던 그 절규가 가슴을 저리게 했던 것이다.

"난 꼽추란 말이오.꼽추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인 줄 아세요? 그 위에 아무도 없소?"

아,그 때 물의 여신은 대체 어디로 갔더란 말인가?

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