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을 앞둔 얼음 속의 물고기처럼 실핏줄에 파랗게 피가 돌기 시작하는 때,아직은 이르다 싶지만 그 피를 어쩌지 못해 스스로 깨어나 길을 나섰다. 그 길에서 마침 남쪽으로 떠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난다. 서울에 살다가 고향의 어머니가 소포로 보낸 '남해산 유자 아홉 개'(<늦게 온 소포>)를 늦게야 풀어본 뒤 시름 끝에 수시로 고향 바다를 찾아 나서게 된 고두현 시인과 그 친구들이다. 문학사랑이 7~8일 주최한 '남해문학투어' 참가자들이 향한 그 고향은 경남 남해군.예로부터 유배지로 유명한 오지의 섬이다. 새로 연륙(連陸)된 창선-삼천포대교를 넘어서자 고개를 왼편으로 돌리며 소개하는 곳이 죽방염 원시어장.자연 그대로의 싱싱함을 자랑하는 최고 품질의 '죽방멸치' 어획 현장인데,최상품의 값이 ㎏당 100만원을 넘는 죽방멸치를 잡는 모습은 이런 답사가 아니면 알기 힘들다.


이어 겨울철 이 지역이 자랑하는 물메기탕으로 속을 든든히 한 다음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켜 주는 어부림(魚付林) 중 천연기념물 수종으로 군락을 이룬 최상급의 물건리 방조어부림을 구경하면서 해변에서 한바탕 시낭송을 벌여본다.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해안,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고두현,<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중)

물건리에서 시작되는,여인의 부드러운 허리처럼 휘어지는 30리 해안은 미조에서 일단 마감되니,그 이름도 아름답게 '물미' 해안이 되어 시인의 관능을 자극해 놓았다. 이를 좋아하는 이곳 군수님(정현태)도 고 시인의 시를 몇 편 읊으며 바다식품의 생산지로서 뿐만 아니라 '시 생산지'로서의 남해를 자랑한다.

1960년대 독일로 가서 산업 역군이 된 우리 동포들이 21세기 들어 촌락을 형성한 독일마을과,이 마을의 독일식 문화를 우리 터전에 함께 녹이며 조성한 해오름예술촌 등도 남해의 새로운 일면을 보게 하는 명소다.

신라 원효가 보광사라는 절을 짓고,조선 태조가 개국의 꿈을 이룬 곳이라는 남해 금산은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멀리서 바라보아 '비단(錦)'빛을 자랑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서서 바라보는 바다 또한 시시때때로 절경을 이뤄 오늘 함께한 시인 묵객들의 가슴을 또 한번 흔들어 놓는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두모 드므개마을에서 배로 5분 거리에 있는 노도(櫓島) 섬.서포 김만중이 이 조그만 섬에 3년 동안 위리안치(圍籬安置)되어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 나중에 <구운몽>이라는 소설로 탄생한 사연이,고 시인의 등단 시 <유배시첩>을 낳았다. 이 섬이 수 년 내로 세계에서도 유래없는 생태문학의 섬으로 조성된다는 소식이 아득한 바다 끝에서 안개를 헤치고 오는 봄빛같이 기껍다.

박덕규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