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들의 들판 헤매기를 세 번 반복하기. 바야흐로 등불이켜지고 있는 마을을 함께 지켜보기. 아득한 울림이자 선연한 헛것 속에 함께 서 있기"(머리말 중) 김윤식(67) 명지대 석좌교수가 중국기행문 「샹그리라를 찾아서」를 펴냈다. 1993년부터 11차례 중국을 여행한 김 교수는 한국 근대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의 시각에서 중국을 바라봤다. "과연 지안이란 무엇인가. 고구려란 우리의 옛 조상이 세운 나라이며 당 태종과 맞섰고 오늘의 동북 3성을 국토로 한 고대국가를 가리킨다는 역사적 사실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경우 역사라 함은 근대가 만들어 낸 허구의 일종이 아닐 것인가. 소위 국민국가주의가 날조해낸 픽션 속에 고구려도 놓여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고구려의 옛 수도 국내성터가 있는 지안(集安). 김 교수는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국내성터를 둘러본 후 고구려사를 중국 변방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 정부의 야심과 한국의 민족주의가 충돌하는 장면을 기록했다. "장비도 죽고, 관우조차 죽은 이 장강. 그 원수를 갚기에 나선 유비조차 천추의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둔 곳. 이 강물을 따라 우리는 사흘 밤 사흘 낮을 흘렀소. 바야흐로 「삼국지」 공부가 시작되었소" 김 교수는 일제시대 임시정부 청사가 위치한 중칭(重慶)을 거쳐 삼국지 촉나라의 무대인 청두(成都) 장강을 여행했다. 그는 마오쩌둥 주석과 김일성 주석이 방문했다는 무후사(武侯祠) 앞에서 김주석에 대한 단상을 적기도 했다. "(김주석은) 역사와 문학 사이에서 오락가락하지 않았을까. 보편성, 거기에 혁명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는 이상주의자이자 낭만주의자였을 터. 동시에 그는 직접 총을 들고 있었기에 갈 데 없는 현실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이어 김 교수가 향한 곳은 윈난(雲南)성 짱(藏)족의 자치주 중덴(中甸)현. 샹그리라('푸른 달빛의 골짜기' 혹은 '이상향'이란 뜻)현으로 이름을 바꾼 이 지역은 해발 6천470m의 설산을 배경으로 양쯔강 상류인 누.란창.진사 등 세 강이 나란히 흐르는 천년절경의 땅이다. 이 지역이 외부 세계에 알려진 것은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1933)을 통해서였다. 힐튼은 이곳을 신과 자연, 인간이 어우러진 이상향으로 묘사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고통받던 서구인들에게 낙원의 꿈을 제공했다. "어째서 '무릉도원'의 나라에서 그 좋은 자기 것을 헌신짝 모양 버리고, 한갓 케임브리지 대학생이 지어낸 '샹그리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 윈난성 전체가 목을 매고 있는 형국이었다" 김 교수는 샹그리라란 옥스ㆍ케임브리지 대학 캠퍼스를 동양의 오지에다 옮겨놓은 것에 더도 덜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힐튼 소설 속에 담긴 오리엔탈리즘과 이를 관광상품으로 이용하는 중국인의 역(逆)오리엔탈리즘을 비판했다. 책은 중국여행에 덧붙여 하노이, 앙코르와트, 툴슬랭 박물관 등 크메르 왕국의 유산을 소개했다. 강출판사 刊. 264쪽. 1만원.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hanarmd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