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인훈(67)씨가 1984년 단편 '달과 소년병' 이후 19년만에 신작 단편소설 '바다의 편지'를 발표했다. 장편소설 「화두」 이후 9년만의 작품이다. 계간지 「황해문화」겨울호(통권 41호)에 실린 이 작품은 잠수함 승무원의 이야기를 통해 본 한반도의 분단된 현실, 냉전 이데올로기 속의 바다와 이를 극복하는바다를 그리고 있다. "어머니. 오래지 않아 이렇게 부를 수도 생각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최씨는 이 말을 처음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요즈음 자주 보는 물고기떼가 여기저기서 나를 건드리며 지나간다. 물고기떼의 한 부분은 내 눈 속을 빠져나간다..여기저기 흩어진 나.." 소설은 공작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지 못한 채 바닷속에서 죽은 청년 수병의 독백으로 이뤄졌다. 수병이 남한의 병사인지 북의 병사인지는 알 수 없다. "접근해야 할 해안까지는 아직도 먼 위치에서 나는 공격당하였다. .모선으로 돌아가려고 뱃머리를 돌렸을 때 큰 타격이 있었다. .내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내 눈자위를 넘어 물고기들이 드나들고 있었고 내 몸통과 팔다리도 백골이 되어 있었다". 백골은 자신이 타고 온 일인승 잠수정을 보면서 자신이 죽던 날의 기억을 더듬는다. "어머니. 나는 이 특별한 임무, 잠수정을 타고 최전방의 바다에서 정찰을 수행하는 특별히 위험한 임무를 지원했습니다. 어머니와 제가 떳떳하게 나라 속에 있기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수병은 "왜 우리는 이 조그만 우리 나라의 연해를 그나마 휴전선으로 꼴사납게잘라 놓고는 보잘것없는 잠수정을 타고 검디검은 그믐밤을 골라 가자미 새끼처럼 기어다녀야 하는지 그 까닭을 알아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또 미래의 희망을 노래한다. "언젠가는 이 바다는 내가 수행했던 임무를위한 배들이 숨어 다니는 바다가 아니고 햇빛 아래에서 흰 돛을 달고 달리는 아름다운 돛배들의 놀이 마당이 되겠지요" 이어 백골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무수한 기억과 바다의 움직임 속에서 혼란스러운 의식의 흐름을 내뱉는다. 독백 틈틈이 이탤릭 체로 쓰인 시 한 편, 1962년에 발표된 중편소설 '구운몽」에 이미 삽입된 자작시 '해전(海戰)'이 삽입돼 있다. 시는 잠수함에 탑승한 젊은 수병들의 죽음, 원인도 알지 못하는 전쟁의 와중에서 바닷속에 수장된 고혼들이 도시의 어항 속의 붕어로 귀환하여 그 죽음의 안타까움과 어처구니없음을 전하고 있다. 시는 그대로 소설의 골격이 되는 익사한 수병의못 다 한 말들인 동시에 작가의 외침이다. "오 한 줄의 시를, 참다운 한 줄의 시를 아무도 쓰지 않기 때문에. 감투가 탐나는 시인들은 호기 있게 거짓말을 한다. 죽어라. 단 한 사람도 글 위에서 죽으려 하지 않으니 보리는 땅속에서 썩지 못한다. 누구도 소금이 되기를 원치 않고 추잉껌과캐라멜이 되기를 원한다" "어머니, 부디 안녕히 계세요. 다시 만날 그때까지". 소설은 수병의 의식이 흐려짐과 동시에 끝맺는다. 최씨는 1959년 단편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으로 등단, 「광장」「회색인」「구운몽」「화두」등 남과 북의 냉전 이데올로기와 정치.사회 현실을비판하는 소설을 썼다.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hanarmd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