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수영(40)씨의 두번째 장편 「도취」가 나왔다. 199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작가는 2년여전 스승과 제자의 연애담을 그린 첫 장편 「매혹」으로 주목을 받았었다. 이번 소설은 '80년대'로 상징되는, 이제는 낡은 것으로 여겨지곤 하는 한 시대 정신에 도취됐던 인물의 자아찾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의 주인공 시훈은 12년전 반국가단체에서 활동했던 이른바 386세대의 인물이다. 80년대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이다. "사랑도 그때의 강렬함에는 견줄 수 없어"라고 말하는 그는 주변에 자신의 방식과 사고를 강요한다. 특히 가족에게 그것은 대단한 억압으로 받아들여진다. 소설이시훈 아내의 외도와 동생의 이혼에 앵글을 맞추는 것은, 시훈의 '빛바랜 미망'이 파국으로 치닫는 정황을 양각하는 방식이다. "나는 그것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혹시 내가 사랑했던 것은 그 정신에 도취된 나 자신의 고결함이 아니었을까. 나 자신의 고상함에 빠진 나르시시즘. 그러나 상처에 민감한 겁 많은 나르시시즘"이라는 시훈의 독백은 그 자체로 안타깝다. 그러나 변혁.갱신의 열망으로 그득했던 80년대의 시대정신이 단순한 자위적 나르시시즘으로만 이해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때가 이타의식에 기반한 '연대'의 시기가 아니었던가. 그에 대한 대타적 반감이 90년대 이후 자기애적 개인주의를 불러온 것은 아닌가. 소설은 이런 물음을 던지게 한다. 이룸 刊. 291쪽. 8천500원.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기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