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한시 시리즈 ] 서점에 갈 때마다 한 권씩 사 모은 '한국의 한시' 시리즈가 거의 30여 권이나 된다. 첫권 '고운 최치원 시선'과 2권 '백운 이규보 시선'을 거쳐 50권 가까이 서점에 나와 있는 데,그 중에서도 나는 '고봉 기대승 시선(高峰 奇大升 詩選)'을 특히 좋아한다. 이 시선을 보면 노학자 퇴계 선생과 사단칠정론을 화두로 7년간이나 편지를 주고받았던 청년학자 고봉의 고고한 정신과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은 한국 지성사를 통틀어 가장 독특하고 뛰어난 학문 논쟁 중 하나로 꼽힌다. 그 당시 퇴계가 보낸 '매화시'에 화답하여 쓴 8편의 '매화시'는 한시 중의 백미다. (허경진 편역,평민사) 김기중(김영사 편집부장) [ 녹색세계사 ] '녹색'은 이미 중심이다. 아니다. '이미'라는 말은 가짜다. 이 책은 녹색(환경)을 무시한 역사가 어떤 결과를 빚어내었는가를 고대의 이스터섬 문명에서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정치 군사 외교는 물론 어떤 인물도 부각시키지 않고 오로지 생태학적 시각에서 세계사를 조명한다. 저자는 영국 웨일스에 있는 스완시 대학 정치학과 교수.환경 정치학과 스포츠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로망 등 녹색을 무시한 문명은 절정에서부터 수직으로 떨어져 멸망에 이르렀다. 풍요의 아이들인 청소년들에게 읽히고 싶다.(클라이브 폰팅 지음,그물코) 장은수(황금가지 편집장) [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 환상문학의 대가 로저 젤라즈니의 대표작들을 모아놓은 중단편집.자신의 글 앞머리에 놓을 발문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은 더디 읽힐 것이다. 먼 은하계를 떠다니는 망한 별의 파편처럼 비감과 비의가 밴 문장들의 잦은 출몰.멋들어진 제목으로부터 시작해 사유의 장으로 점핑하는 이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마치 몇만 광년 떨어진 자리에서 지구 공간의 전쟁을 추억하고 있는 외계인들의 전설처럼 읽힌다. '가장 빛나는 SF의 별 중 하나''명석하고 유연한 스타일리스트이며 고결하고 사려 깊은 작가'라는 그의 명성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휴가에서 복귀한 이들에게 바치는 상상력 강장제. (로저 젤라즈니 지음,열린책들) 김수한(생각의나무 편집부장) [ 그대 나를 위해 쉼표가 되어다오 ] 29세에 죽은 시인에 대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그의 시집을 읽게 된 때는 시인이 죽은 나이와 똑같은 29세였다. 시인의 앞가슴은 눈부셨고 애련했다. 그것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고 자괴에 빠뜨렸다. 29세의 죽음이라면 왜 하필 이경록인가? 그 의문의 답은 한 시절이 흐른 후에야 알듯 말듯 다가왔다. 미학을 가르치는 늙은 여교수의 화장기 같은 시가 널브러진 요즈음 그의 시는 혈죽(血竹)이니까. '나는 마침내 한 개의 마침표가 되겠다. 그대여.모든 그대의 쉼표가 쉼표로 끝나고,어미 와 함께 종결로 올 때 나는 그 끝에 쓰러져 마침표가 되겠다. 끝없는 죽음,그 백면(白面)을 나 혼자 만나겠다.' (이경록 지음,고려원) 이종록(청년정신 편집실장) [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빛나는 유머와 뜨거운 패러독스.18세기의 대표적 지식인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싱싱하게 재구성한 책이다. 끊이지 않는 유머로 읽는 사람을 한눈팔지 않게 하고,날카로운 패러독스로 박지원의 삶과 18세기라는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하인이자 친구들인 '장복과 창대'가 벌이는 해프닝들,중국통 '득룡이'의 기막힌 지혜,연암과 함께 호질을 베껴 쓴 '정진사' 등 빛나는 조연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한 편의 여행 기록이지만 그 안에는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만남이 있고,새로운 담론이 펼쳐지는 경이의 장이 있다. 열하일기로 휴가를 떠나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고미숙 지음,그린비) 선완규(휴머니스트 인문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