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제일 중요한게 뭐라고 생각합니까."


어스레한 저녁, 전주한옥생활체험관 대청에서의 다도(茶道) 체험시간.


다음 전주전통술박물관장(38)이 질문을 던졌다.


'글쎄 뭘까?'


가지런한 다관 앞에 정좌한 대청의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그런 물음을 오래전 잊었다는 듯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 침묵 뒤에 누군가 주저하는 목소리로 "관...혼...상...제(冠婚喪祭)"라고 답했다.


모두가 스트레스를 많이 일으킨다는 생활의 순간들이다.


"저는 마음을 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조심스레 입을 연 다음 관장은 '마음을 쉬는 것'과 다도를 연결시켜 말을 이었다.


"우리 몸은 소우주예요. 자연의 이치에 어긋남이 없지요. 지.수.화.풍(地水火風) 네개의 기운이 조화로이 어울려 생명을 구성하는데, 하나가 틀어지면 전체가 무너져요. 찻물의 불기운(火氣)이 너무 세거나 약하면 안되는 것도 같은 이치지요. 끓어올라 센 불기운의 찻물은 기다려 식힙니다. 그렇게 네개의 기운이 알맞게 어울리게 만든 한 잔의 차를 음미하며 보내는 한가한 시간. 다도는 바로 자기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완성을 향해 가는 수행의 순간순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옥생활체험관에서의 하룻밤을 연 다도체험 시간은 내내 '수행'이 강조됐지만 분위기는 그리 무겁지 않았다.


우려낸 차는 나중에 따른 것을 어른께 대접하고, 하나의 차는 하나의 잔에 따라 마셔야 똑같은 맛을 유지할수 있으며, 넓은 소맷자락을 한 손으로 잡고 찻잔을 드는 것 자체가 '하늘에 잔을 올린다'는 의미의 우리식 건배라는 등 재미있는 상식도 얻을수 있었다.


다도체험 뒤 대청과 안채, 사랑채로 둘러싸인 안마당에서 민속놀이를 해보았다.


투호 팽이 널뛰기 윷놀이 굴렁쇠 등 없는게 없다.


흥이 많은 아이들이라면 심심해 하지 않겠다.


안마당은 기와로 된 처마선을 따라 가지런히 패어 있다.


참 오랜만에 보는 마당의 빗물자국이다.


키 큰 토관에 꽂아둔 나뭇가지는 산수유인 것 같은데 기와와 기둥, 마당색과 잘 어울린다.


한옥체험의 하이라이트는 잠자리.


안채에 딸린 규수방에 들었다.


진짜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온기를 유지하는 구들을 들인 방.


누렇게 기름을 먹인 정사각형 종이 장판이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새로웠다.


두터운 보료가 깔려 있는 아랫목 중앙은 새카맣게 타 있다.


황토벽과 천장은 하얀 한지로 도배를 해 방이 제법 넓어 보였다.


오래된 느낌을 주는 문갑과 경대, 옷걸이장과 이불을 넣어두는 삼층장이 놓여 있다.


작고 빨간 열매가 달린 나뭇가지로 장식한 화병, 큼지막한 도자기가 알맞게 놓여 있다.


지필묵도 가지런하다.


냉장고와 에어컨, 스테인리스 주전자 외에는 모두 옛 양반집의 안방 냄새를 느낄 수 있도록 신경쓴 것 같다.


외풍은 좀 심했는데 그 외풍이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해주는 요소중 하나라고 하니 못견딜게 없었다.


방음이 잘 안되는게 최대의 흠.


길게 잔 잠 끝이 개운했다.


아파트처럼 건조하지 않았고, 여행지의 싸구려 러브호텔에서 잤을 때처럼 찌뿌드드 하지 않았다.


장작불을 세게 넣었는지 상반신에 땀도 비쳤다.


아침을 여는 프로그램은 '명상의 시간'.


티벳의 명상음악, 납청유기를 두드려 내는 길고 청아한 울림에 맞춰 호흡을 가다듬었다.


우리네 양반들이 매일 그런 여유를 가졌다면, 호사도 그런 호사가 없을 듯 싶었다.


안채 대청에서 받은 납청유기 가지런한 7첩반상이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나물이며 국이며 조미료 한 술 안 쓰고 차렸다는데 하나같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숟가락과 유기그릇이 부딪칠 때 나는 소리는 밥상머리의 마음가짐을 조심스럽게 했지만, 마음의 리듬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즐거웠다.


짐을 정리해 먼 길에 올라야 할 시간.


개운한 잠자리에, 제대로 된 밥상을 물린 뒤니, 그 거리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전주=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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