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중인 독일의 노벨상 작가 귄터 그라스와 소설가 황석영씨는 29-30일 중앙대에서 열린 심포지엄 '통일과 문화'에서 전제 조건의 총족없이 남북 통일을 서두르기만해서는 안된다는 일치된 의견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즉 의욕만 앞서 졸속으로 이뤄진 통일은 또 다른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뿐이라는 게 두 사람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두 사람 모두 직접 몸으로 참여하거나 소설 쓰기 작업을 통해 자국의 통일문제에 대해 발언해 온 유력 문인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일치된 통일관은 시사하는 바 크다. 그라스는 29일 를 주제로 한 발제에서 성급히 통합을 추진한 독일이 많은 부작용을 겪은 예를 들면서 "가능성이 열린다해도 통일을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통독 과정에서 서독 통화의 성급한 도입이 많은 것을 파괴하는 등 국가연합체제라는 과도기를 거치지 않은 게 문제였다고 지적하면서 일단 연합체제 안에서 남한이 북한에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어느 일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절대 안되고 구체적으로 "남한은 역사의 승리자로서 북한에 마음의 상처를 주면 안된다"는 그라스의 충고도 동등한 동반자의 입장에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한 뒤 합쳐야 뒷탈없는 깔끔한 통합이 이뤄질 것이라는 의미다. 황석영씨도 30일 참여한 발제 '남과 북은 서로를 변화시킨다'에서 "누가 지금이 단계에서 통일을 원하는가를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당연하게 '반대한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황씨는 통일을 위한 전제조건들이 총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몇 가지 주요선결과제를 제시했다. 우선 한반도에서 유지되고 있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 정착시켜 한반도를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정전 체제 아래서 작전 지휘권을 가진 미국이 전쟁 당사국이던 북한에 대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전쟁을 개시할 수 있는 상황이고, 러시아와 중국은 남한과 이미 수교했는데도 미국과 일본은 아직 북한을 승인하지 않은 현실에서 통일의 길은 요원하다는 분석이다. 또 대내적으로 남한은 보다 자주적이고 민주화된 정부를 창출하고 북한은 완고한 원칙주의에서 유연한 현실주의로 돌아서는 등의 자체 노력이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충족시켜야할 필수 선결 조건이라는 것이 황씨의 주장이다. 중앙대 한독문화연구소와 주한 독일문화원이 주최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이밖에도 독일작가 우베 콜베, 독일 브레멘방송국 문화부장 외르크 디터 코겔, 서울대 인문대의 백낙청.김문환 교수,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등이 주제 발표자로 나서 바람직한 한반도 통일 모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