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의 전설을 만났다. 지난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파블로 지글러 5중주단의 공연은 전설적인 탱고 연주자이자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5중주단에서 10년 동안 피아노를 담당하던 파블로 지글러를 통해 원단 탱고의 멋과 맛을 확인한 자리였다. 전반부는 예상과 달리 피아니스트 지글러가 전면에 부각되지는 않았다. 지글러는 음반에서는 피아노가 전면으로 나온 '바람의 밀롱가' 같은 자신의 명곡에서조차 반도네온(아코디언과 비슷한 모양을 갖고 있으나 건반악기가 아니고 키를 눌러 화성으로 연주하는 것이 다르다)이나 기타에 솔로 자리를 양보하기도 했다. 지글러는 리더이면서도 앞으로 나서지 않고 탱고에서의 피아노 본연의 역할인 다른 악기들을 두루 감싸주는 역할을 자청했다. 이들의 음악은 탱고는 역시 '몸으로 듣는 음악'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피아노의 몸체를 두드리거나 콘트라베이스의 몸체를 훔쳐서,또 드럼 스틱으로 그려낸 음향효과로 짜릿한 전율을 던져주었다. 피아졸라와 지글러의 레퍼터리가 반반씩 조화롭게 섞인 이번 공연에서 파블로 지글러 5중주단은 긴장과 이완의 조절을 통해 몸과 가슴에 직접 호소하는 탱고를 들려주었다. 피아졸라의 '천사의 죽음''리베르 탕고''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봄' 로드리게스의 '라 쿰파르시타' 같은 탱고의 명곡들을 연속적으로 들을 수 있었던 귀한 자리였다. 이들의 음악적 특징은 아르헨티나 탱고 바에서 들을 수 있는 탱고가 현대화된 모습이었다. 즉 보다 재즈적이었는데 원래 재즈 피아니스트였다가 피아졸라를 통해 탱고에 입문했던 지글러인지라 역시 재즈적인 화성과 감성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센티멘털리즘의 대가인 지글러의 감수성은 2부 첫 순서로 들려준 카를로스 가르델의 솔레다드(고독),자작곡인 '우아한 칸젠기토'에서 기타리스트 클라우디오 라가치와의 듀엣 연주를 통해 전면에 부각되었다. 반도네온 주자인 엑토르 오라시오 델 쿠르토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처럼 강렬하고 화려한 반도네온 주자는 아니었지만 반도네온의 구슬픈 영혼의 울림을 담백하게 표현해 냈다. 이번 공연에서 아쉬움이 있었다면 잘 믹싱되지 못한 음향과 깨끗하기만 했던 무대였다. 탱고 공연답게 선명한 음향과 색깔 있는 조명 디자인으로 분위기를 더욱 돋우어주었다면 감동의 파장은 증폭되었을 것이다. 공연기획사 빈체로는 이번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에 따라 5월중 2002 서울 월드뮤직페스티벌에 올릴 또 다른 야심작 조빈 모렐렌 바움 4중주단의 브라질 음악을 몹시 기다리게 했다. 장일범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