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 시는 "풀"과 "바람"이라는 명사와 "눕다" "일어나다" "울다" "웃다"라는 동사 두 쌍만을 교묘하게 반복함으로써 뛰어난 음악성을 만들어낸다. 단순하기에 오히려 암시성의 극대화를 가져온 시가 바로 "풀"이다. 이런 까닭에 일부에서는 풀을 민초의 상징어로 읽어 참여시의 표본으로 내세우는가 하면,일부에서는 대지에 뿌리를 내린 인간의 근본적 삶과 관련된 순수 서정시의 백미로 본다. 이처럼 견해가 엇갈리는 것 자체가,이 시가 풍부한 의미성을 내재하고 있는 문제작이라는 증거다. 이 시는 직설투의 딱딱한 산문적 언어에 의한 시작 과정을 거쳐 시인 김수영이 도달한 예술적으로 깊어진 세계를 유감 없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