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호타루(반딧불이)''를 보는 느낌은 착잡하다. 2차세계대전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로 스러져간 한국청년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한국관객은 이 작품을 순전히 영화적 문법만으로 재단해 보기는 어렵다. 물론 ''호타루''가 일본의 과거사를 변명하거나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도 젊은이들의 무고한 죽음이 있어선 안된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렇지만 영화가 끝났는데도 뭔가 미진하고 공허하다. 깔끔한 영상과 아릿한 감상(感傷)만으로는 한과 증오로 얼룩진 한.일 과거사의 엄청난 무게를 지탱하기가 어렵기 때문일까. ''호타루''의 주무대는 큐슈 최남단 가고시마현의 한적한 어촌이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그 곳에서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안고 살아온 어부 야마오카(다카쿠라 켄).그에겐 심한 신장병을 앓고 있는 아내 도모코(다나카 유코)와 그녀의 이름을 딴 어선 한 척이 있다. 어느날 일왕의 서거에 이어 특공대 동료 후지에(이가와 히사시)가 죽었다는 소식이 날아들고,이들은 가슴속에 묻어 뒀던 아픈 과거를 회상한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특공대원이었던 야마오카와 후지에는 가미카제 출격을 앞둔 가네야마 소위의 유언을 듣는다. 가네야마 소위는 일본군에 강제징병된 한국인으로 약혼녀인 도모코를 남겨둔 채 폭탄이 실린 비행기를 탄다. 야마오카는 약혼자를 잃고 슬퍼하는 도모코를 위로하다가 연정이 생기고 결국은 부부가 돼 서로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살아간다. 다시 현대.야마오카 부부는 특공대의 대모 역할을 해온 여인의 부탁으로 가네야마 소위의 유언을 전하기위해 한국의 안동 하회 마을을 찾는다. 유족들로부터 심한 수모를 당하지만 야마오카 부부는 눈발 날리는 소위의 부모 묘소앞에 서서 ''한국에 오기를 잘 했다''고 말한다. ''호타루''는 이처럼 한국인 소위의 가슴아픈 사연이 큰 축을 이룬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은 반전이나 인권옹호가 아니다. 그 보다는 아내의 ''옛 약혼자''까지 인정하고 포용함으로써 완성되는 노부부의 절절한 사랑을 얘기하려 한다. ''철도원''을 연출했던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은 ''호타루''에서도 서정적 영상을 빚어 낸다. 물결 출렁이는 바다,그 바다위에 그림처럼 떠있는 사쿠라지마 화산,그리고 한국의 하회마을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배경에서 잔잔하게 펼쳐지는 ''황혼의 부부애''는 슬프면서도 풍요롭다. ''철도원''에 출연했던 다카쿠라 겐의 절제된 연기도 깊이가 있다. 아내가 죽고 아끼던 배를 불태우는 마지막 장면.이젠 삶에서 더 잃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절망의 상태,그 슬픔의 극점을 다카쿠라 켄은 실룩이는 얼굴 근육과 촛점잃은 눈빛 만으로 무리없이 표현해 낸다. ''나가자 동무들아 어깨를 걸고.''라는 노랫말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불렸던 스코틀랜드 민요를 시종 구슬픈 하모니카음으로 들려주는 음악감독(쿠니요시 료이치)의 감각도 뛰어나다. 이런 미덕에도 불구하고 한.일간의 역사적 앙금은 영화를 보는 내내 걸리적 거린다. 가미카제 특공대로 죽어간 젊은 넋의 상징인 ''반딧불이''가 실제로 화면에 등장하는 등의 비사실적 설정도 영화의 흐름을 끊는다. 18일 개봉.이정환기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