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목어(木魚)소리가 들릴듯 한 산사나 누각에 연로한 동자상(童子像)이 홀로 앉아 묵상을 즐긴다.

"고운정(孤雲亭)" "낙낙정(樂樂亭)" 따위의 현판 글씨가 암시하듯 그림 속의 인물좌상은 무심경에 빠져 탈속과 달관의 정적미를 보여준다.

원로 화백 김상유(76)의 그림 모티브는 한국적인 삶과 정서가 담긴 정자,누각이다.

"무위자연"에 복귀하고자 하는 명상의 세계를 단순하면서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1960년에 한국 최초로 동판화를 제작해 명성을 얻었고 80년대 중반 유화로 전환해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가꿔왔다.

그의 작업 40년을 돌아보는 "김상유 전작전"이 17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유화 1백여점을 비롯해 60년대 제작한 동판 목판화 등 대표작 1백20여점을 선보인다.

연세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김 화백은 인천 동산중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30대 중반에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국내에 생소했던 동판화기법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동판화 개인전을 통해 판화가로 명성을 얻은 김 화백은 1970년 제1회 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80년 중반 판화 대신 유화를 택했다.

"열심히 만들면 뭐해.사는 사람이 없는 걸.너무 먹고 살기 힘들어 할 수 없이 붓에 손을 대기로 했지"

도시적 삶이 싫었던 그는 걸핏하면 카메라를 메고 전국의 고건축을 찾아다녔다.

경북 안동 봉화 영양 등 그의 고건축 순례는 80년대 후반까지 계속됐고 이는 유화작업에 든든한 밑받침이 돼줬다.

그는 한국 고건축의 핵심은 삽상한 대숲과 아담한 뜰이 있는 사랑방이라고 강조한다.

"창문 현판 난간 마루가 있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워.단아하면서도 웅장한 사랑방에서 선비의 기품이 느껴지지"

그의 작품에는 판화이던 유화이던 간에 정자 사랑방에 가부좌를 튼 남자의 참선하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그 동자상은 바로 작가 자신이다.

속세의 일상사로부터 탈출해 무위자연에 복귀하려는 고독한 순례자로의 희구가 담겨 있다.

새와 해 물고기 소나무 등이 등장하는 또다른 그림들은 동화적 분위기가 풍기며 때로는 해학미마저 느껴진다.

김 화백은 2년 전부터 붓을 놓은 상태다.

녹내장으로 인한 시력장애 때문이다.

그의 시력은 물건을 바로 코 앞에 갖다놔야 겨우 보일 만큼 나빠졌다.

평남 안주 출신의 김 화백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판화비엔날레,이탈리아 카르피스의 국제판화트리엔날레, 프랑스 파리의 파리 비엔날레 등에 출품했고 1990년에는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했다.

2월15일까지.(02)734-6111∼3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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