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는 아버지가 따로 없고 남편이 없으며 아내도 없다' 소설가 이경자씨(53)가 중국 서남부 지역 오지에서 발견한 것은 인간의 완전한 자유였다. 이씨는 지난 9월 한달간 윈난성의 루그호 주변에 사는 모소족 사회를 방문하고 온 뒤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이룸.1만2천원)를 펴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유교적 가부장제의 획일성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문화인류학 보고서같다. 그가 중국의 오지를 굳이 택한 것은 여행 전문가 한비야씨의 권유 때문. 친자매처럼 지내는 한씨로부터 몇년 전 "언니가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꿈꾸다 비로소 '낯선 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절반의 실패' '혼자 눈뜨는 아침' 등으로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아픔을 다뤄온 그의 '준비된 기행'이기도 했다. 그는 모계사회인 모소족에게 성의 억압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아버지'나 '남편' '아내'라는 단어가 없다.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지적처럼 '단어'가 없는 곳에서는 그와 관련된 '의미'도 없다. 모든 가정은 여성 중심으로 유지되고 남자는 장가들지 않으며 여자는 시집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자가 권력을 잡는 것도 아니다. 필요 없는 권위나 억압이 없는 자유사회 그 자체다. 무분별한 성개방이나 '난혼'의 방종도 없다. 13세 때 성인식을 치른 남녀는 3년간 마음에 드는 상대를 탐색하고 그 후 3년동안 자유롭게 교제하다 3년 뒤에는 서로 합방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하고 남자가 여자의 집을 찾아간다. 남자는 자정에서 새벽 5시 사이에만 여자의 집으로 간다. 마음에 들면 방문이 열리고 그렇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 집에 가서 사는 것은 아니다. 모소족 남자들은 영원히 어머니의 아들이다. 아이의 교육은 어머니의 남자 형제와 할머니가 맡는다. 아버지가 자식을 가끔 만나긴 하지만 아내와 자식에 대한 남자의 소유 개념이 없다. 모소족은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한다. 어머니 뱃속에 웅크린 태아의 자세로 시신을 안치하고 그 주위에 나무를 쌓아 불을 붙인다. 사람은 결국 모든 어머니의 자연으로 귀환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들은 이렇게 체득한다. 이씨는 모소족의 문화를 보며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숙명적인 천형'을 감내했던 우리의 지어미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에게 배타적인 '반란'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