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 선갤러리에서 14번째 개인전을 갖고 있는 중견작가 김재학(50)씨.들꽃그림으로 유명한 그가 이번 개인전에서는 겨울장미를 테마로 한 정물화 30여점을 내놨다. 김 씨가 장미만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장미는 우리에게 친숙하면서 가장 오래된 미술 소재이기도 하다. 친숙하다는 얘기는 작가입장에서 볼 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누구나 그릴 수 있고 누구나 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꽤나 경력을 갖고 있는 작가들치고 장미를 그리는 작가는 별로 없다. "들꽃그림보다 그리기가 힘들더군요. 장미 한 송이 한 송이를 집중해 그려야하는 데다 관람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그의 겨울장미는 꽃 색깔이 다 다르고 꽃병도 다양하다. 유리꽃병이 있는가 하면 나무꽃병 심지어 양철로 만든 꽃병도 등장한다. 들꽃그림이 배경화면을 반추상으로 처리한 반면 이번 겨울장미는 완전한 구상작이다. 김씨는 구상화단에서 탁월한 감각의 데생 솜씨로 잘 알려진 작가다. 우리 산하 도처에 서식하는 들풀,야생화의 생기와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왔다. 그는 단순히 사실적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대상의 생기와 감동을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전달한다. 일반 미술애호가보다는 '화가들이 칭찬하는 작가'로 통할 정도로 다른 구상작가들과 남다른 점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 독학으로 미술을 배워 20여년간 생계를 위해 미술학원 강사로 활동하면서 혼자 힘으로 기량을 쌓았다. 1976년 군에서 제대한 후 서양화가 구자승씨가 운영하는 미술학원에서 강사를 하면서 그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뛰어난 데생력을 갖추는 데는 스스로의 노력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림이라는 게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작가로서 겪는 고비들을 넘는 것은 전적으로 스스로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그는 꽃 그림뿐 아니라 초상화도 잘 그린다. 그가 그린 재계 유명인사 초상화만도 수 십점에 달한다. 김씨는 나이들어서도 집요한 붓질을 요하는 꽃그림을 그릴 것이냐는 질문에 "손이 떨릴 때까지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그림 앞에 서 있다보면 정물화를 구 시대의 유물쯤으로 폄하하는 많은 추상작가들의 시각이 편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수채화공모전 대상을 수상하고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내년 1월19일까지.(02)734-0458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