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지난 1백년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형성.전개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형성과 전개를 경제인들의 열정이 이끌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같은 경제인들의 실제를 제대로 그려낸 소설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당대 현실의 반영 정도가 가장 높은 문학 장르가 소설인데도 말이다. 자못 뜻밖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했을 것인데 가장 큰 요인은 세 가지로 보인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중산층 출신이어서 상층 경제인의 세계를 잘 모른다는 것 상업 활동을 낮게 보는 한국 사회의 오랜 가치관의 구속에 갇혀 그 세계의 안쪽을 알려는 관심이 적었다는 것 지난 1백년의 한국문학을 이끌어온 주요 상상력 가운데 하나인 혁명적 정치성의 상상력이 경제인을 부정적 대상으로 미리 규정해버렸기 때문에 그 실체에 대한 구체적 탐구를 제약했다는 것 등이다. 이처럼 빈약한 가운데서도 경제인을 중심에 둔 소설들을 엮어 소설사의 한 맥락을 세울 수 있다. 그 첫머리에 우뚝 선 작품은 염상섭의 장편 '무화과'(1934)다. 널리 알려진 '삼대'의 속편인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삼익사라는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청년 실업가다. 조선 경제의 견인차가 되겠다는 젊은 의욕은 드높았지만 세계 경제 대공황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 무너지고 만다. 그가 걷는 그 의욕과 좌절의 행로는 드디어 우리 경제가 세계적 경제 질서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며 식민지 조선 민족자본의 허약함이 어느 정도인가를 말해주는 안쓰러운 증언이기도 하다. 1930년대는 '황금광 시대'라 불릴 정도로 금 열풍이 대단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을 비롯해 이기영의 장편 '광산촌',채만식의 장편 '금의 정열' 등 금 열풍의 현실을 다룬 작품들이 줄이어 나왔다. 금 열풍의 한복판으로 자본이 진입해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데 이 시기 금광 자본의 성격이 어떠했나는 '금의 정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금광 사업으로 큰 돈을 번 주상문이란 청년 경제인은 오로지 이익 창출을 향해서만 움직이는 자본의 논리에 철두철미 충실한 인물이다. 이민족의 지배 아래 들어 있는 식민지 현실도 민족의 수난도 그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해방 이전의 경제 활동은 식민지 통치권력의 중심인 총독부와 유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해방과 함께 사정은 돌변해 새로운 통치권력의 중심인 미군정과 유착하지 않으면 성장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김남천의 장편 '8·15'와 염상섭의 장편 '효풍'에 등장하는 경제인들은 하나같이 미군정에 빌붙어 이익을 도모하는 매판자본가들이다. 1970∼80년대 우리 소설에 등장하는 경제인들은 거의 모두가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혁명적 정치성의 상상력 앞에서 그들의 긍정적인 면모는 아예 관심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 어느 한쪽만의 일방적인 강조가 아니라 그 전면적 실체를 소설 속에 담아낸 최초의 성과는 홍상화의 장편 '거품시대'와 그 속편인 '불감시대'다. 1987년에서 1989년까지 약 3년간을 다룬 '거품시대'와 IMF 시대를 다룬 '불감시대'는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경제적 상류층의 실체를 처음으로 그들의 일상 생활과 그들의 의식 안쪽에서 구체적으로 그려내었던 문학사적 문제작이다. 작가는 욕망과 음모가 뒤범벅돼 있는 혼탁한 세계 한복판을 흘러 그 어둠의 세계를 환히 밝히는 젊은 경제인의 '절대의 사랑'과 참된 경제인의 길을 찾는 그의 고뇌를 통해 이 같은 혼돈의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했다. 경제기획원 장관 출신인 노작가 김준성이 써내고 있는 일련의 경제소설에서도 우리는 이 시대 경제인들의 실상을 만날 수 있다. 대표작 '흐르는 돈'은 재벌 세계를 그 내부의 시선으로 다루었다. 주목되는 것은 주인공 박 회장이 제시하는 '돈의 정화'라는 기업가 윤리다. 경영권의 가족 세습 관행을 벗어나 전문 경영인에게 그룹의 경영권을 넘긴다는 것,재단을 설립해 사회사업을 통해 자본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돈의 정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호웅(문학평론가.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