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우리 나라의 국기가 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므로 국기를 바꿔야 한다" 국립 대만대학교 철학연구소에서 주역 연구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상섭(金尙燮.48.부경대 강사)씨는 최근에 낸 저서 「태극기의 정체」(동아시아)에서 태극기에 담긴 의미와 제정 과정을 사료를 통해 고증, 이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김씨는 국기가 갖는 존엄성과 태극기가 갖는 문제점은 다르다는 전제 아래 태극기가 우리 민족과 우리 나라를 과연 제대로 상징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 나간다. 먼저 태극기의 구성요소인 '태극' '음양' '괘'의 의미를 살펴보면 '태극'은 「주역」계사전(繫辭傳)에서 점괘를 얻는 최초의 근원으로서 점(占)의 범주에 속하는 개념이었고, '음양'은 양달과 응달이라는 자연계의 대수롭지 않은 현상을 나타내는 용어였으며, '괘'는 중국 주(周) 초기에 점을 치기 위해 그려진 부호에 불과했다. 이에 '태극' '음양' '괘'는 상고시대 중국 민족의 지혜의 산물로 중국 고대철학사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는 개념들이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와 정체성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태극기의 제정 과정 또한 우리의 자주적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조선의 국기가 중국의 속국임을 상징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처음의 '8괘'가 영국인의 말 한마디에 '4괘'로 수정됐다는 것이다. 조선이 국기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은 '운요호 사건'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 국기의 도식을 처음 말한 사람은 청의 황준헌(黃遵憲)이었다. 저서 「조선책략」에서 그는 조선이 중국의 용기(龍旗)를 그대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아무런 반발없이 그가 종용한 대로 청의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에게 이를 주청했고, 이홍장은 조선 왕의 '용을 그린 네모난 기[畵龍方旗]'가 용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국기로 삼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국기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는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전권부관 김홍집과 청의 사신 마건충(馬建忠) 사이에서 이뤄졌다. 「청국문답」에 기록된 두 사람의 필담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두 차례의 회담 끝에 마건충은 "'바탕은 흰색, 가운데는 태극 그림, 바깥 둘레에는 8괘를 사용한 도식[고태극도]'을 조선의 국기로 할 것"을 명하고, 김홍집을 이를 받들었다. 두달 뒤 일어난 임오군란의 피해보상 문제로 일본 배 메이지마루(明治丸)를 타고 일본으로 떠난 박영효는 「사화기략(使和記略)」이라는 일기장을 남겼는데, 여기에는 태극기가 본래의 '고태극도'에서 4괘가 빠지고 괘가 왼쪽으로 45도 각도로 기울어지게 된 경위가 담겨 있다. '고태극도'의 8괘가 너무 복잡하고 불분명해 다른 나라들이 제작하기에 불편하다는 영국인 선장 제임스의 말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태극기는 거론-제안-결정-사용에 이르는 전과정에 있어 우리 민족의 자주성, 주체성, 정체성, 상징성이라고는 털끝만큼도 부여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태극기는 바로 약소민족의 상징"이라며 "국기를 바꿔야 한민족이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음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책을 매듭짓고 있다. 304쪽. 1만2천원.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k02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