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일본 대기업에게 속수무책으로 시장을 내주며 참패했던 미국 대기업들이 어떻게 재기할 수 있었는가.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경제경영서 "래티컬 이노베이션"(렌셀러 경영대학원 근본적 혁신 프로젝트팀 지음,정규재 옮김,아침이슬,1만8천원)에 해답이 들어있다. "래디컬(radical)"을 흔히 "급진적"이라고 번역하지만 이 책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개척한다는 의미에서 "근본적 혁신"으로 쓰고 있다. 저자는 미국 10개 대기업의 근본적 혁신 프로젝트를 공동연구한 대학교수들이다. 이들은 IBM,GM,GE,듀폰,폴라로이드사 등 쟁쟁한 회사들의 12개 근본적 혁신 프로젝트를 5년간 연구,종합보고서로 내놨다. "근본적 혁신"이란 뭔가? 저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성능을 갖추거나,기존의 기능을 다섯배 이상 개선하거나,30% 이상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혁신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면 IBM이 디스플레이와 컴퓨터 메모리,전력효율성이라는 3대 요소를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혁신 모델로 창출한 것을 떠올릴 수 있다. 근본적 혁신의 유형은 크게 세가지.우선 똑같은 고객과 시장을 겨냥해서 기술을 새롭게 바꾸는 경우다. GE는 의료시스템 사업에서 응용하고 있던 기술을 자기공명 영상진단 기술로 혁신시키고 상용화했다. 이런 상관관계는 기존 시장에서 기업의 지위를 강화시켜준다. 두번째는 틈새 혁신.현재의 기업 전략 범위에 들어있지만 그 사업들 사이의 틈새,신규 수요를 메워주는 걸 말한다. IBM PC는 IBM의 컴퓨팅 전략범위에 포함되는 것이지만 새로운 고객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줬다. 세번째는 외부에서 이뤄지는 혁신이다. 이른바 낯선 시장을 열어주는 문인데,아날로그 디바이스가 자동차 산업과 전자공학을 발빠르게 접목시켜서 기존 영역 밖에 있는 자동차 에어백 응용제품들을 개발하고 거대시장을 얻은 것이 좋은 예다. 기술개발 분야의 국내 예를 들자면 LG 삼성 현대가 공동으로 이뤄낸 CDMA기술 상용화가 있다. 이들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던 기술을 상용화해서 우리나라를 CDMA 종주국으로 우뚝 서게 했고 통신장비와 관련 부품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이같은 혁신은 말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어서 몇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그걸 저자들은 일곱 단계로 차근차근 설명한다. 무엇보다 근본적 혁신 아이디어를 포착하고 사업으로 연결시키는 인식이 중요하다. 이를 잘 활용하려면 일련의 과정을 조직 메커니즘으로 실현시키는 허브,즉 지식과 경험의 저장소를 갖추라고 조언한다. 시장조사 기법도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점진적 혁신에서 사용되는 옛날식 시장조사 기법은 버리고 시장학습 과정으로 삼으라는 얘기다. 확고한 수익모델을 구축하고 상용화팀을 별도로 구성하라는 제언도 들어있다. 저자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리더십 확보라고 역설한다. 경영진은 근본적 혁신을 주도하는 챔피언,기존의 저항과 반대로부터 지켜주는 보호자,적극적인 지원자여야 하며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하는 조직문화 형성자 역할도 하라는 것이다. 이 책은 대기업 경영진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관리자,신사업 개발 책임자,획기적인 비즈니스 세계를 꿈꾸는 예비 혁신가들의 눈을 번쩍 띄워줄 만하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