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소설 '비둘기 역설' 출간 .. 이수그룹 김준성 명예회장 ] "소설가와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인간의 삶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쓰고 기업을 경영해야한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새 장편소설 "비둘기역설"을 최근 펴낸 이수그룹의 명예회장 김준성(81)씨는 "문학은 단순한 취미활동의 하나가 아니라 삶을 충동질하는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총재,부총리 등을 지낸 그는 지난 83년 공직에서 은퇴한 후 최고경영자로 활동하며 2년마다 소설 1권씩을 펴내왔다. 그동안 소설집 '들리는 빛' '욕망의 방'을 비롯 장편소설 '먼 시간속의 실종' '사랑을 앞서가는 시간' 등을 발표했다. 그는 요즘도 매일 아침 회사에 정상 출근,업무를 본 뒤 퇴근해 두 세 시간 원고지와 씨름한 뒤 잠을 청한다. '돈과 문학'이란 이질적 세계를 '외줄타기'로 넘나들고 있는 셈이다. "돈과 문학이 상반된 성격을 가졌다는 생각은 낡은 것입니다. 양자는 모두 사회 현상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사회 현실을 경제가 지배하고 있지요. 경제를 알면 사회병리의 실체도 쉽게 파악하고 소설로 형상화하기도 용이합니다" 그의 작품들에는 물질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경제전문가로서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를 표명하면서도 그것에 내재된 무제한적 자본증식 욕망의 위험성을 일깨우고 있다. 그는 또 부조리한 현실을 초월해 순수하고 본원적인 세계를 지향해 왔다. 이번에 펴낸 소설 '비둘기역설'은 불륜의 주인공들을 통해 차원높은 사랑과 예술의 의미를 모색한 작품이다. 동시에 비둘기가 아파트주민들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실태를 통해 우리 문명의 남루함도 통박하고 있다. "왜곡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은 개인의 인성과 가치관을 여지없이 파괴하고 있습니다. 소설이 무색할 정도로 끔찍한 사건들이 도처에서 일어납니다" 그는 최근 양로원 근처에 노인을 버리는 '현대판 고려장'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고 이를 소재로 삼은 단편 '그가 남기고 온 자리'도 탈고했다. 고려시대의 '절대 가난'은 이제 사라졌지만 '상대적 빈곤감'은 더욱 커졌고 물욕은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는 요즘 경제학 원론서인 '맨큐의 경제학'을 읽고 있다. 경제 전문가에게 필요없을 듯하지만 '옛날과 보는 눈이 달라졌기에' 다시 읽는다고 했다. "나이가 드니까 글자가 잘 안보여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확대복사한 사본을 보곤 합니다. 밤에는 매일 5∼10장씩 원고를 쓰면서 하룻동안의 생각을 붓으로 정리하지요" 그에겐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수정 보완함으로써 한 걸음씩 전진하는 습관이 배어 있다. 그는 "누구에게나 문제점이 없다면 그것은 후퇴"라며 "앞선 눈으로 보면 문제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