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두 켤레의 구두가 닳아 없어진다/삼백예순두명과는 사별한다/구천사백오십번의 오류와 실수들/그에 따른 불가피한 후회의 한숨들/항구에 묶인 배들은 영원히 떠나지 못한다/빈 술병들이 달의 껍질처럼 여기저기 함부로 뒹군다''(개기일식 중)

장석주(45)씨가 아홉번째 시집 ''간장달이는 냄새가 진동하는 저녁''(세계사)을 펴냈다.

시인 평론가 소설가로 1인3역을 하고 있는 장씨는 1979년 등단 이후 시집 ''완전주의자의 꿈'',장편소설 ''낯선 별에서의 청춘'' 등을 펴냈다.

장씨의 시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방랑이다.

시인은 책 혹은 세계 속으로 길을 떠난다.

세상의 모든 도서관은 구두가 빼곡이 차있는 신발장과 같다.

구두는 저마다 걸어온 길의 흔적을 갖고 있다.

더러는 흙이 묻어 있고 더러는 젖어 있다.

시인은 나의 탯줄을 묻은 곳은 신발장,즉 그 도서관이라고 말한다.

''기억과 욕망이란 서가를 몇 천개씩이나 가진 도서관/새의 발자국이라는 제목의 책/나무 그늘이라는 제목의 책/찰나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책/나는 그 세 권의 책을 대출받아야 한다'' 도서관을 병원삼아 살아온 시인은 이제 자연에 관한 책을 빌리고자 한다.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감자들이란/땅의 불순물을 묵묵히 견뎌내는 聖者(성자)/물의 혹,흙의 내향성 체질의 순수 결정체다//땅들이 내는 감자들을 산처럼 쌓아놓고/지구위의 사람들이 공평하게 나눈다면/10억 인구가 배고파 잠 못드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감자 중)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