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갑니다.

뉴밀레니엄의 첫 해라고 희망에 부풀었던 날들도 덧없이 저물어갑니다.

학술적인 의미에서는 올해가 진짜 세기말이지요.

피부로 느끼는 신체달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의 터널에서 밤을 지새는 이웃들.

세밑에 나온 책 한 권이 우리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사람의 가치에 관한 경제명상록 ''서비스의 달인(원제 The Soul of the Firm)''(윌리엄 폴라드 지음,김성웅 옮김,낮은울타리).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포천''선정)인 서비스마스터 얘기입니다.

남들이 꺼리는 3D업종으로 자진해서 뛰어든 기업.

화장실 청소에서 해충박멸,병원관리에서 재난구조까지 어둡고 낮은 곳이면 어디서나 이 회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거대 서비스 기업을 운영하면서 종업원들에게 어떻게 자존심과 생산성,삶의 보람을 불어넣는지 알려주는 책''이라고 칭찬했군요.

새해 첫날보다 올해 마지막날 저녁에 읽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회사 회장입니다.

20년 전 변호사와 교수 자리를 내놓고 중역으로 부임한 그는 곧바로 종합병원 청소용역팀을 맡았지요.

허드렛일도 직접 했습니다.

복도에서 대걸레질을 하는데 한 여인이 다가와 "당신이 폴라드예요?"하고 물었습니다.

아내의 먼 친척인 그녀는 "아니,변호사가 아니었던가요?"하며 걸레를 내려다보았지요.

"아니에요.이게 제 새 직업인걸요"

그가 삶의 깊은 성찰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지구촌 곳곳의 5백만 고객을 기쁘게 섬기고 있습니다.

신을 섬기듯 사람을 섬기는 자세.

''예배''라는 말은 영어로 ''서비스''지요.

요즘 유행하는 CRM(고객관계유지)의 ''내 성공을 고객이 좌우한다''는 원리와도 통합니다.

이 회사는 개인과 가정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어떻게 초일류 기업에 버금가는 생산성을 올릴 수 있었을까요.

비밀은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군림하지 않고 이끌어가기)''에 있습니다.

''돈은 비료와 같아 쌓아놓을수록 좋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수익에만 초점을 맞추면 핵심 역량을 키우는 데 실패하고 결국 고객을 잃고 만다''

놀랍게도 이 회사 순익은 매출액의 50%에 달합니다.

그는 ''왜 사람 몸뚱이 전체를 고용해? 필요한 건 두 손뿐인데''라고 했던 헨리 포드를 지적하며 ''기업정신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서는 두 손 이상의 전인격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매사에 말랑말랑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는 일을 성취하려면 리더에게 저돌적인 창업자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종업원에게도 힘이 되고 서비스가 되는 창조적 추진력을 말하지요.

돌아보면 우리 사회의 위기를 몰고온 주범은 진정한 서비스 정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나와 남을 서로 존중하는 서비스 마인드만 갖추면 걸레 한 장,양동이 하나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이 책의 메시지가 그래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