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전자 사장을 지낸 김용원 도서출판 삶과꿈 대표가 경제칼럼집 ''피카소 그림과 벤처주식''(삶과꿈,8천5백원)을 펴냈다.

3년전부터 신문에 정기적으로 발표한 칼럼을 순서대로 편집하고 90년대 초반에 쓴 원고 중 시의에 맞는 것들을 골라 엮었다.

그의 글에는 IMF사태 이후 충격과 격변 속에서 힘들게 지나온 한국인의 여정이 시간대별로 기록돼 있다.

그때그때 이슈들을 가감없이 다뤘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높낮이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프리즘이기도 하다.

한편에 2백자 원고지 6장 정도씩의 분량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깊다.

마지막에 한줄씩 덧붙이는 ''경구''가 읽는 맛을 더해준다.

내용도 다양해서 주식투자 얘기부터 현장경영론,복숭아 경제학까지 종횡무진 넘나든다.

때로는 ''NO''라고 말할 수 없는 우리의 부끄러움을 질타하고 때로는 전문경영인의 애환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미국식의 주주중심 구조조정과 알짜기업 해외매각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

그는 ''경영자들이여,부하들 목을 자르려면 스스로 자기 배를 먼저 갈라라''는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의 말을 인용하며 인재를 중시하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한다.

표제글인 ''피카소 그림과 벤처 주식''에서는 벤처 열풍의 명암을 예술작품에 빗대어 표현한다.

피카소가 단골 이발사에게 돈 대신 작은 그림을 쓱쓱 그려주곤 했는데 나중에 그림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단숨에 부자가 된 이발사.

테헤란로 건물주들이 외환위기 이후 전셋돈 빼달라는 바람에 은행빚 안고 쩔쩔매다가 ''당장 돈이 없으니 주식이라도 받아주지 않겠느냐''는 벤처업체들의 제의를 받아들였다가 주식값이 30배 이상 올라 횡재를 했다는 얘기.

이같은 일화의 뒷면에는 한때 도깨비 방망이같았던 벤처기업과 거품이 빠지고 난 뒤의 퇴출기업이 오버랩돼 있다.

딱딱한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재테크와 골프''얘기를 보자.재테크는 돈을 쫓아다니고 골프는 흰 공을 쫓아다니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게 공통점이라고 지적한다.

욕심을 부릴수록 더 안되는 것이 재태크와 골프라는 것이다.

재테크의 귀재라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저자 구영한씨가 ''돈과 여가''라는 책의 부제를 ''놀면서 벌고 벌면서 논다''라고 붙인 것도 본업 없이 재테크로 흥청대지 말라고 일러주는 것이라고 일깨운다.

흔히 골프를 ''운칠기삼(운 70%에 기술 30%)''이라고 하지만 골프 잘 치는 사람들은 절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며 재테크도 이와 같다고 덧붙인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조선일보 편집국장,대우전자 사장,대우경제연구소 회장을 거쳐 출판사 사장으로 이어지는 그의 인생철학까지 음미할 수 있다.

단순한 칼럼 묶음이 아니라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한 권의 ''잘 익은 에세이'' 같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