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싸워 이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상대가 다국적 기업일 경우 소송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국적 기업만이 아니다.

대주주 가진자들 앞에서 진리는 "눈가리고 아웅"인 경우가 흔하다.

11일 개봉하는 "인사이더" (Insider) 는 "진리는 대기업 대주주 가진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사회의 기본구조"를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이다.

만인이 "법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현대사회에서 맞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 영화를 보면 이런 점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브라운 & 윌리암슨(B&W)사의 연구개발책임자이자 부사장인 제프리 와이갠드
박사(러셀 크로우)는 "의사소통 능력미달"이란 이유로 갑자기 해고된다.

그러나 진짜이유는 딴 데 있었다.

B&W사가 담배 판매량 증대를 위해 인체에 치명적인 암모니아 화합물을
담배에 넣는 것을 반대한 게 화근이었다.

미국 CBS방송의 인기프로 "60분"의 PD인 로월 버그만(알 파치노)은 익명의
발신자로부터 필립모리스사의 한 연구논문을 입수한다.

버그만은 논문 내용이 전문용어 투성이여서 이해하기 힘들자 전문가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와이갠드 박사를 만나게 된다.

와이갠드 박사가 언론인과 접촉하는 것을 감지한 B&W사 경영진은 그가
입사할 당시 서명한 "비밀엄수서약서"를 빌미로 협박한다.

입을 열면 그와 가족을 모두 죽이겠다는 전자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이에 화가나 와이갠드 박사는 B&W사의 비리를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버그만은 B&W사가 담배에 암모니아 화합물질을 넣은 사실과 경영진이
의회에서 위증했다는 박사의 증언내용을 생생하게 녹화한다.

그러나 버그만은 뜻밖의 벽에 부딪친다.

CBS이사회가 박사의 폭로인터뷰를 방송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은 것이다.

방송에 나갈 경우 B&W는 CBS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는 CBS가 웨스팅하우스사와의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송에
휘말릴 경우 합병이 무산되고 그렇게 되면 합병으로 인해 이사회 임원진에게
돌아가는 엄청난 이득이 수포로 돌아가는 데 있었다.

와이갠드 박사는 협박에 못이긴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한다.

설상가상으로 버그만으로부터 폭로내용이 방송에 나가지 못하게 됐다는
설명을 듣고 절망감에 빠진다.

버그만 자신도 다른 프로 PD로 좌천된다.

"인사이더"는 현재 미국에서 20개월째 재판이 진행중인 실화를 소재로
만들었다.

B&W는 필립모리스, RJ 레이놀즈 등의 담배회사와 함께 플로리다주 흡연
피해자 50만명으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한 상태다.

재판 결과가 어떻든간에 담배회사들은 지금까지 소송에서 진 적이 거의
없다.

방송사같은 권력기관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돈을 무기로 덤벼드는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에서 이길 재간이
없는 것이다.

똑같은 이유로 PD가 방송사 이사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감독 마이클 만은 이러한 자본주의사회의 숨은 "힘의 논리"를 정교하게
파헤쳤다.

그는 "히트" "라스트 모히건"으로 좋은 평판을 얻은 감독이다.

가족이 우선인가 사회가 우선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와이갠드 박사의 고충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마피아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알 파치노가 PD로 변신한 것도 이채롭다.

"인사이더"는 올해 아카데미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등 7개부문 후보에
올라있다.

< 이성구 기자 skl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