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숙씨(47)는 국내에 몇 안되는 갤러리스트(Gallerist)중 한명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홍익대 응용미술과)한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화랑을
연 것은 17년전.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유명 원로작가의 명성에 매달리기
보다는 흙속에 숨어 있는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를 단순히 화랑주인이 아닌 갤러리스트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씨가 생각하는 "좋은 작가"란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색채를 가진자다.

투박하고 구수하고 은은한 멋.한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아름다움.

우리 멋의 참맛을 살릴 줄 아는 미술가가 국제경쟁력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도 전통미술에 지독하게 빠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경주 이모님댁에 가는걸 좋아했다는 박씨는 중3때 길에서
5백원 주고 산 와당(기와) 파편을 첫 컬렉션으로 기억한다.

대학시절에도 고미술에 대한 열정 때문에 서울 아현동과 인사동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손에 쥐어지는 돈은 모두 털어 모은 덕에 지금은 조각보 목기 도자기 등
전통미술품이 방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다.

이처럼 대단한 고미술광인 그가 수집품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것은 20여점의
석물이다.

자연석 그대로의 모양을 간직하고 있는 거북, 부처에게 기원하는 동자승,
가슴에 낙서인지 모를 새가 그려져 있는 민간 불상 등.

누가 만들었는지 작가의 이름도 모른다.

어쩌면 만들다가 도중에 그만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백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나이를 알길 없는 돌덩어리들을
최고의 컬렉션으로 꼽는 이유는 이것들 모두가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자세히 보고 있으면 명랑하고 재미있는 우리 선조들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의 볼을 보세요. 조그맣게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또 뒷머리에는 울룩불룩 빗금이 그어져 있어요. 옛날사람들의 해학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박씨는 돌이 비뚤어져 있으면 비뚤어진 대로, 구멍나 있으면 구멍 뚫린대로
자연 그대로를 보여주는 소박한 심성을 좋아한다.

"그런 자연미는 한국인만이 만들줄 안다"다는게 그의 견해다.

올해는 이런 우리만의 아름다움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에 알릴 계획이다.

벌써 독일 쾰른과 미 마이애미 전시회에 우리 작가를 내보내는 큰 수확을
얻어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 설현정 기자 so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