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명 : ''문명의 공존''
저자 : 하랄트 뮐러
역자 : 이영희
출판사 : 푸른숲
가격 : 14,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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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신랄하게 비판해 화제를 모은 독일 학자
하랄트 뮐러(51).

그가 자신의 저서 "문명의 공존"(이영희 역, 푸른숲, 1만4천원) 한국판
출간에 맞춰 23일 서울에 왔다.

그는 "독일과 한국이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양국의 정치적 삶도 매우
유사한 근간 위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독일인 혹은 한국인이기에 앞서 보편적인 인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서 "단순하지만 광범위한 근본적 통찰에서부터 책이 씌어졌다"고
밝혔다.

프랑크푸르트대 교수이자 헤센평화.갈등연구소장인 그는 이 책을 통해
새뮤얼 헌팅턴(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문명의 충돌"이 왜곡된 세계관으로
가득하다고 질타했다.

문명충돌론의 핵심은 "냉전 이후 세계사가 국가나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문명간 대립 단계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헌팅턴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서 낙관한대로 자유민주주의
의 확고한 승리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문명, 그 중에서도 종교에 의한 새
갈등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냉전이론의 변형, 새로운 황화론, 백인 우월주의 등이 그것이다.

미국 외교정책 수립을 둘러싼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든가 "우리 대
그들"이라는 도식에 집착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뮐러는 "오컴의 면도날"을 빌려 그를 비판한다.

후기 스콜라 철학자 윌리엄 오컴의 이름에서 따온 이 말은 "가장 단순한
가설로 가장 많은 것을 설명하는 이상적 이론"을 일컫는 것.

헌팅턴이 지나치게 단순한 잣대로 복잡한 현상을 싸잡아 설명하려 했다는
얘기다.

그는 비판적 합리주의 입장에서 보면 진지하게 검증되지도 않았을뿐만
아니라 유리한 물증만 수집하고 반대 증거는 무시한 결과라며 "엉터리
면도사의 손에 들린 "오컴의 면도날"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충고
한다.

특히 중동의 이슬람과 동아시아의 유교를 서구 민주주의의 심각한 장애물로
규정한 헌팅턴의 오류는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이슬람 국가와 민족이 샌드위치 속의 치즈처럼 다른 문명 사이에 끼여 있는
현실을 무시하고 이슬람과 비이슬람간의 분쟁이 월등히 많다고 우겨댄
케이스"다.

이는 육로를 경계로 한 국가들간의 갈등이 많다는 일반론을 확인해줄 뿐
이다.

이슬람-유교 동맹의 잔혹 시나리오를 펼치지 위해 중국과 북한의 대 이슬람
국가 무기판매를 언급한 것도 마찬가지.

미국의 대 이슬람 무기 판매량은 중국과 북한의 10배가 넘는다.

헌팅턴 식으로 하자면 서구-이슬람 동맹으로 불러야 할 판이다.

이란의 핵기술 파트너인 러시아와 연결하면 정교-이슬람 동맹인가.

헌팅턴이 이런 식으로 보스니아 분쟁까지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게 뮐러의
주장이다.

그는 이같은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의
공존, 패쇄가 아니라 개방이라는 분석틀로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
한다.

헌팅턴이 음양과 흑백의 이분법적 논리로 세계를 재단했다면 뮐러는 상생의
원리로 조명한 셈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외교정책을 뒷받침하는 헌팅턴과 유럽 군축문제 전문가인
뮐러의 차이랄까.

그러나 뮐러 역시 문명공존의 주도권은 서구가 쥐고 있다는 관점에서는
헌팅턴과 다름없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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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책제목을 굳이 "문명의 공존"이라고 한 것은 "조화"나 "변증법적 종합"의
전제가 곧 "공존"이기 때문이죠. 상이한 문명간의 공통영역이 확산되더라도
각 문명의 독자성은 보존될 것입니다"

하랄트 뮐러는 김경동 서울대교수와의 대화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국가와 사회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이라는 제3요소를 중요한
분석틀로 삼아야 한다는 김교수의 지적에 대해 "경제영역의 독자성을 중시
하는 데 공감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3가지 근본구조및 과정에 따라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했다.

즉 권력과 안보 등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들의 세계"와 지구촌 시장을
매개로 하는 "경제 세계", 대화 윤리 연대성을 중시하는 "사회(단체)들의
세계"가 밀접하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