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뉴욕 밀라노 런던 도쿄...

올 봄 전세계 패션 도시들은 수채화 물감을 짜놓은 것처럼 컬러풀할
전망이다.

이 도시의 젊은 여성들이 빨강 파랑 노랑 등 강렬한 원색과 레몬 복숭아
멜론 등 과일색상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컬러에 흠뻑 취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 각 도시에서 열렸던 컬렉션에서 유명 디자이너들은 부드럽고
환한 색상의 급부상을 예고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베르사체, 존 갈리아노, 장 폴 고티에 등은 새 천년 첫
봄에 대한 환영인사를 그 어느 때보다도 밝고 기분좋은 색상으로 대신했다.

컬렉션을 지켜본 해외 언론들은 올해의 색상을 라이트( Light )가 아닌
브라이트( Bright )컬러라고 말한다.

그것도 모자라 울트라 브라이트라고 명명한 패션매거진도 있을 정도다.

이같은 분위기는 작년 봄과 또 다르다.

99년에도 옐로 컬러를 중심으로 파스텔톤이 유행색조로 대두됐지만 올해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또 파스텔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 회색과 매치하기 위한 코디컬러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브라이트 컬러는 같은 브라이트 컬러와 매치해 더욱 인상적인 느낌을 준다.

전문가들은 이상컬러열풍에 대해 "새로운 시대에 대한 낙관론과 이전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를 내고자 하는 욕망이 튀는 색상을 트렌드로까지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이제 컬러가 트렌드를 이루는 한 요소가 아닌 그 자체라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90년대 초반부터 10년간을 끌었던 소재 싸움에 한계를 느낀
디자이너와 소비자들이 이번에는 컬러 변화에 눈길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70년대 패션브랜드는 디자인으로 차별화하고 80년대에는 패턴으로
경쟁했던 반면 90년대에는 소재싸움이 우선이었다.

즉 옷의 질과 스타일,세련되고 아니고를 판단하는 기준이 "소재를 얼마나
잘 썼느냐" 또는 "얼마나 신소재를 썼느냐"에 있을 정도로 옷감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낙하산 천인 나일론을 가방과 옷에 응용한 프라다와 역시 첨단소재로 인기를
끌었던 질 샌더 등 90년대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두 브랜드 모두가 그 좋은
예다.

국내 패션계도 브라이트 컬러 붐의 예외는 아니다.

지난 연말의 SFAA컬렉션에 출품한 유명 디자이너들은 저마다 가장 다채로운
색을 동원해 무대 위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빨강과 파랑등 삼원색과 소프트한 컬러가 쏟아져 나왔다.

색동스카프를 보여준 박윤수, 색색의 니트로 옷을 짠 루비나, 강렬한
빨강과 분홍을 매치시킨 지춘희, 그리고 손정완의 수박빛 실크 랩스커트
등 한국 패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들 또한 컬러풀한 봄을 예고했다.

디자이너 브랜드보다 좀더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브랜드들도 마찬가지다.

격조높은 쿠튀르 감각을 추구하는 브랜드 오브제의 춘하 상품 테마는 려
(빛날 려,고울 려).

얼마만큼 화려한 색상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타임, 린, 아이잗 바바 등 커리어우먼용 정장을 주로 만드는 점잖은 취향의
브랜드들은 부드러운 파스텔 계열 위주의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여기에 스카프와 핸드백 모자 등 소품색상으로 진한 바이올렛이나 자줏빛
처럼 강한 컬러를 써 포인트를 준다.

지난 12일에 있었던 오즈세컨 윤한희 컬렉션의 주제는 "노란 봄에 피는
연두사과".

이름만 들어도 봄 내음 가득한 매장이 곧 멋쟁이 여성들 곁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 설현정 기자 so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