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의 사제"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

사후 2백여년간 거의 잊혀졌던 비발디의 재기발랄한 음악은 1950년대이후
이무지치를 비롯한 이탈리아실내악단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 가운데 비발디 특유의 극적 표현력이 정점에 달한 "사계"는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레퍼토리중의 하나로 자리잡는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 일본 등에서 높은 인기를 얻는다.

이탈리아 최초의 정격연주악단으로 현재 가장 주목받는 실내악단인
"일 지아르디노 아르모니코".

"조화로운 정원사들"이란 뜻의 이 비범한 젊은이들은 "이무지치"류의
전통적인 연주와는 사뭇 다른, 독창적인 "사계"를 들려준다.

94년 세계무대에 등장한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정격연주"를 표방하며
바로크음악에 대한 색다른 해석으로 명성을 쌓아가다 96년 텔텍레이블로
"사계"를 출반, 전세계 클래식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국내에 뒤늦게 선보이는 조화로운 정원사들의 "사계"는 총알이 첼로를
뚫고 지나가는 표지사진 만큼이나 파격적이다.

당시의 악기와 편성으로 고증과 재현을 목표로 하는 정격연주는 학구적이고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놀랄 만큼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사계"가 흐른다.

무엇보다 도드라진 특징은 빠른 템포와 이탈리아 특유의 강렬한 현.

이현우의 히트송 "헤어진 다음날"의 주제로 쓰여 더욱 유명해진 "겨울"의
"라르고"악장을 현악합주의 익살맞은 피치카토에 맞춰 1분40여초에
끝내버린다(대부분은 2분20초 안팎).

마치 현이 부숴질 것같은 힘차고 대담한 보잉은 긴장감을 이끌어내고
동시에 이를 단박에 해소하는 통렬함을 맛보게 한다.

독주가 두드러진 부분에선 비르투오소적인 기량을 거침없이 펼쳐내고
테오르보 바순 오르간 등이 첨가된 화려한 바소 콘티누오(저음반주부)는
바로크의 윤택함을 드러낸다.

뛰어난 실력이 뒷받침된 패기넘치는 젊음의 "파격"은 언제나 통쾌하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