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클랍'' ''주크''가 잘 팔리는 덕인지 업계에서 저희 회사에 대해
''변신에 성공한 곳"이라는 평을 많이 합니다.

직원들도 무척 고무돼 있고요.

95년부터 2년동안 계속한 변화노력이 성공한데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현재의 상승무드를 놓치지 않고 계속 앞서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패션업체 (주)대현의 조소도(56) 사장은 대표적인 여성복 내셔널브랜드
업체로 꼽히던 대현을 규모만 큰 게 아니라 개성강한 옷을 만드는 회사로
변모시킨 주역이다.

대현이 탄생한 것은 77년.

''페페''(77년) ''마르조''(87년)를 통해 자리잡은 대현은 80년대 중반부터
국내의 대표적인 패션업체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대현의 패턴은 대량생산과 광고공세로 이어지는 내셔널브랜드
업체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형태로는 단기간에 회사규모를 키우고 이익을 늘릴 수는 있어도
개성있는 패션브랜드 이미지를 가꾸는 일은 요원했다.

조사장은 93년 사장 취임과 동시에 변화를 전제로 대대적인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를 실시했다.

변화의 방향은 옷의 개성을 강화하고 필요이상으로 비대해진 중간관리
부문은 줄인다는 것.

효율성과 개성이 상충할 때는 과감히 개성을 택했다.

가장 먼저 대두된 것은 규모확대의 주요 수단이었던 신용판매와 패밀리
카드의 처리문제.

처음에 큰 위력를 발휘하던 카드는 점차 미수금 발생으로 인한 혼란을
가져왔고, "할부로 파는 옷"이라는 인상을 줘 기업이미지를 깎아내렸다.

점포가 3곳인 지방도시에 관리직원이 80명이나 있을 만큼 인력낭비도
심했다.

결국 93년 40만명에 가깝던 카드회원을 20만명으로 줄였다.

효율성만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경제성만 따진다면 브랜드에 관계없이 소재를 일괄구매하는 것이 좋지만
각 브랜드의 개성이 무뎌질 위험을 감안, 개별구매를 고수했다.

이런 노력을 빛나게 한 결정타는 적절한 방향설정.

영캐주얼이 가장 중요한 시장이라는 결론 아래 ''나이스클랍''(95년)과
''주크''(96년)를 런칭했고 이들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주크''성공에는 젊은층이 많이 보는 홍콩 스타TV에 직접 광고한 과감한
홍보전략도 한몫 했다.

98년에는 유니섹스 캐주얼 ''도니 라이크''를 내놓을 계획이며 자회사 대현
양행을 통해 스포츠캐주얼도 준비중이다.

대현의 96년 매출은 2천4백억원.

조사장은 영남대 법학과를 나와 줄곧 의류업계에 종사했으며 82년부터
대현에서 일해 왔다.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