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명동 술집에서 미당 (서정주)을 만나 막걸리 몇 사발을 거푸
들이켜곤 그의 시를 줄줄이 외워댔다.

그는 여간 좋아하지 않으며 "내 새끼, 내 새끼"를 연발터니 내 볼을
움켜잡고 입을 쪽쪽 맞추는데 놀랍게도 혓바닥까지 들이미는 게 아닌가"

소설가 이호철씨의 "문단골 사람들" (프리미엄북스)에 나오는 일화다.

시인 고은씨가 내놓은 "만인보" (창작과비평사)에도 내로라 하는
문인들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또 시인 김영주씨의 "내가 사는 데서 그대의 집 갑절로 그립다"
(장문산)에는 아버지 파인 김동환의 인간적인 면모가 잔잔하게 묘사돼 있다.

"이호철의 문단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문단골 사람들"은 50년대
한국문학사의 본령이자 시대를 풍미한 대가들의 이면을 엿보게 하는
문단풍속화.

열아홉살에 단신 월남한 작가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부두노동자로
연명하면서 어려운 생활끝에 "탈향"으로 데뷔한 뒤, 여러 문인들과 만나
함께 웃고 울던 얘기들이 들어있다.

당시 문인들의 사랑방이던 명동 "마돈나"다방 풍경이 재미있다.

한구석에서는 김동리와 훗날 그의 아내가 된 다방주인 손소희가 나란히
앉아 문학과 사랑을 속삭이고, 정지용과 김영랑이 얼멍덜멍 앉아 있는
한켠에는 이용악이 술에 취해 시를 읊조린다.

시인 천상병에 대한 얘기 한 토막.서울대 상대 2학년때 데뷔한 그는
누구에게건 막걸리 한잔값을 얻어 사시장철 마신곤 했는데, 언젠가 두잔값인
2천원을 내미는 사람을 보고는 즉석에서 천원을 돌려주며 "임마, 경제를
생각해, 경제를"하고 일갈했다던가.

화장실이 급하다며 황급히 뛰어가는 한말숙의 핸드백을 들고 길거리에
황망히 서있던 삼천포 촌사람 박재삼의 모습도 새롭다.

시인에다 현대문학사 기자였던 그의 18번은 "굳세어라, 금순아".

이밖에 성북동 조지훈 선생 댁으로 신년인사 가는 길에 구두를 택시에
벗어놓고 내린 줄도 모르고 눈밭을 걷던 김관식과 훤칠한 키에 육군대령
군복의 선우휘, 손이 유난히 예뻤던 청년 서기원, 통 큰 여자 모윤숙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고은씨의 "만인보"에 나오는 문인들은 어떤가.

최근 출간된 13~15권에는 "우툴두툴한 마른 유자껍질 얼굴의 젊은 작가/
갈색의 작가" 조세희와 "마치 고깔쓴 이승의 승무인 양 날렵하고/입안에
장수이빨이 많은" 박완서, "38선을 넘어온/그 낮은 키 그대로/그 작은 몸
그대로"의 김규동, "구식 인쇄기의 인쇄지 넘기듯이 걸어가는" 최인훈을
비롯해 천승세 차범석 강은교 등이 등장한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를 두곤 "시 음악 그리고 산에 깊이 귀의해/책에
귀의해/여기 조선의 중도 지식인 있다"고 노래한다.

김영주씨의 산문집 "내가 사는 데서..."에는 파인 김동환의 문학과 삶이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

없는 형편에도 남 주기를 좋아했고 술을 즐기지 않아 합석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지만 중도에 나올땐 눈치채지 못하게 벗어놓은 상의를 두고
나오던 그.

잡지 "삼천리"를 창간한 뒤 여러 사정으로 집에 못들어갈 때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가 애잔하다.

"그동안 기별도 못하고 참으로 미안하였다.

10일날 오후 4, 5시경에는 꼭 갈터이니 기다려라. 여기 삼천원과 과자
선사 온 것을 보내니, 먹으면서 공일날 놀러 다녀라"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