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 주연파괴 바람이 거세다.

한두명의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던 과거와 달리 여러명의 배우를
주연으로 기용, 저마다 독특한 캐릭터로 살려내는 영화가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

현재 제작중인 방화중 가장 많은 주인공이 출연하는 영화는 이민용
감독의 "개같은 날의 오후"(순필름).

여성들의 권리와 자아회복을 그리는 이 영화에는 무려 11명의 여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하며 상대역 남자배우도 7명이나 등장한다.

아내를 상습구타하는 남자를 실수로 죽인 여자들이 아파트옥상으로
피신하면서 예상외의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급기야 모든 지배권력과
대결하게 된다는 내용의 블랙코미디.

11명의 여주인공은 손숙 하유미 정선경 김보연 송옥숙 이진선 임희숙
황미선 문수진 김선화 이명희.

여기에 정보석 이경영 김민종 이제락 윤문식 신철진 이호성 등이
가세한다.

남편의 구타에 못이겨 이혼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40대후반의 작가
지망생과 의처증에 시달리는 30대주부, 다혈질의 호스테스, 게으른
남편대신 음식배달을 다니는 50대초반의 식당여주인, 이웃집 남자와
정을 통한뒤 태연히 일광욕을 하다 사건에 휘말리는 독신녀 등 각기
다른 길을 걷는 여자들의 삶이 망라된다.

오병철 감독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오병철프로덕션)에도
강수연 심혜진 이미연 등 3명의 톱클래스여배우와 6명의 남자배우가
등장한다.

공지영씨의 소설을 극화한 이 작품은 대학동창인 세 여성의 결혼생활을
통해 여성의 진정한 홀로서기를 그린다.

강수연은 사회활동을 하던중 아이를 잃고 부부갈등이 깊어져 이혼한
작가 혜완역으로 나온다.

경혜역의 심혜진은 아나운서로 풍요로운 가정생활을 누리는 자유주의자.

이미연은 남편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지만 결국은 심한 박탈감에 빠져
자살하는 영선역을 맡았다.

영선의 희생은 혜완과 경혜의 새출발을 재촉하는 자극제로 작용한다.

이진우 김의성 이일재 윤동환 임일찬 등이 상대역으로 출연해 입체
연기를 펼친다.

이밖에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신씨네)가 한석규 심혜진
진희경에 신현준을 추가해 식구를 늘렸으며, 이일목 감독의 "카루나"도
옥소리 김청 조재현 최종원 이진수 등으로 출연진의 폭을 넓혔다.

박찬욱 감독이 준비중인 "삼인조"(영화세상)와 여균동 감독의
"포르노맨"(익영영화)에도 주인공이 최소한 3명이상 등장할 전망이다.

주.조연의 구분을 파괴하는 이같은 현상은 한두사람의 스타에 의존
하던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삶의 다양한 양상을 드러내기 어렵고
그 결과 국내팬 확보는 물론 국제경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옥이이모" 등 주.조연이 따로 없는 TV드라마의 성공도 영화계의
주연파괴 바람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여겨진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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