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비디오계에 동양여인들의 삶을 밀도있게 다룬 3편의 외화가 등장,
눈길을 끌고 있다.

프랑스에서 활동중인 베트남계 신인감독 트란 안 홍의 "그린파파야
향기",홍콩출신 웨인 왕감독의 "조이럭클럽",중국 5세대감독의 기수
장예모의 "귀주이야기"가 11월의 화제비디오.

이들 영화는 각기 베트남 미국 중국을 배경으로 한많은 동양여인의
일생을 깔끔하게 처리해 보는이들로 하여금 많은것을 생각케 하는
수작들이다.

"그린파파야 향기"는 지난해 칸영화제 신인감독 최고의 영예인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영화.

한 베트남여인의 운명을 절제된 대사와 뛰어난 영상으로 나타낸 예술성
높은 작품이다.

프랑스 지배하의 50년대 베트남. 여주인공 무이는 어느 몰락한 가정의
하녀로 들어가 주인아들의 치근덕거림을 견디고 이웃남자 쿠엔에게
애정을 느낀다.

쿠엔은 먼발치서 바라만봐야 했던 "다가갈 수 없는 남자"였으나 묘한
운명으로 무이는 쿠엔의 하녀가 된다.

그의 집에서 무이는 남자를 섬기고 사랑하면서 새로운 삶을 발견한다.

베트남인들이 부엌뒤편 텃밭에서 가꾸는 파파야의 향기처럼 이나라
여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은은하게 그려졌다.

"그린 파파야"만큼이나 녹색으로 가득찬 화면이 인상적이다.

"조이럭클럽"은 할리우드에서 최초로 소수민족에 의해 만들어진 소수
민족의 영화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 중국에서 건너온 4명의 여인과
그들의 딸이 겪는 애환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미국에 이민온 4명의 중국여인이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조이럭클럽이란 친목회를 만들었다.

정기적으로 모여 향토음식과 마작을 즐기는 자리다.

네 주인공은 각기 외동딸을 두었는데 그중 한명이 세상을 떠난 엄마
대신 초대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딸을 잘 키우려는 희망과 꿈에 모든것을 걸고 중국을 떠나 샌프란시스코
에 도착한 어머니들의 고난사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10여개이상의 에피소드를 치밀하게 배치하면서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진지하게 묻는 점이 돋보인다.

"귀주이야기"는 장예모감독과 여배우 공리가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에 이어 4번째로 함께 만든 영화.

중국사회의 커다란 문제점중의 하나인 관료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이
영화는 중국의 사회현실을 정면으로 다뤄 주목을 끌었다.

귀주는 출산을 앞둔 중국북서부 산골마을의 억센 촌부. 그녀의 남편은
마을 촌장과 남녀차별문제를 놓고 치열한 언쟁을 벌이다 폭행을 당한다.

부당한 촌장의 처사에 의연히 항거하고 나선 귀주가 끈질긴 법적투쟁
끝에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 영화의 기둥줄거리다.

중국 최고의 인기여배우 공리를 제외하고는 실제 농부들이 대거
출연했다.

92년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장예모감독
의 사실주의적인 연출력이 진가를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