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에서 한국의 특허 경쟁력이 주요국에 비해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원전 관련 기술 경쟁력이 뚝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SMR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원전 강국’으로 불렸던 한국의 입지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허 영향력’ 미국의 18분의 1

SMR 경쟁력 中·日에도 밀려…'원전 강국' 韓, 뿌리부터 흔들
31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2022년 특허 빅데이터 기반 산업혁신 전략보고서: 원자력발전’에 따르면 한국의 SMR 특허는 영향력과 시장 확보 가능성에서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 유럽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허는 핵심 기술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을 20년 동안 주장할 수 있는 ‘국제 면허증’이다.

2000년대 들어 각국에서 개발이 본격화된 SMR은 부피가 상용 원전(1000㎿) 대비 100분의 1 이하, 전기 출력이 300㎿ 이하인 4세대 원전을 말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영국 등이 소듐고속로(SFR), 고온가스로(HTR), 용융염로(MSR), 납냉각로(LFR), 경수로형 등 70여 개 노형을 개발 중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SMR 특허 영향력(0.12)은 미국(2.14)의 약 18분의 1에 그쳤다. 시장 확보력 역시 0.06으로 1위 중국(2.42), 2위 일본(0.89)에 비해 한참 뒤졌다. 두산, 현대, SK 등 주요 그룹이 SMR 선도업체인 미국 뉴스케일파워, 테라파워 등과 협력을 늘리고 있는 것도 기술적 열세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2001년부터 20년간 출원된 SMR 특허 1위는 뉴스케일파워(57건)였다. 2위는 테라파워, 3위는 웨스팅하우스다. 뉴스케일파워는 세계에서 SMR 상용화 속도가 가장 빠른 기업이다. 테라파워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세운 스타트업으로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가 지원하고 있다. 일본 도시바가 8위, 한국전력기술이 9위에 올랐다.

○투자도 거의 이뤄지지 않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기구(NEA)는 앞으로 5~10년 내 SMR 상용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2035년 세계 SMR 시장 규모는 6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특허전략개발원 관계자는 “SMR은 기존 원전보다 안전성을 크게 높이면서 입지와 출력 면에서 유연성을 갖춰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은 SMR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산학연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자체 개발한 SMR ‘이빈치(eVinci)’를 연구중심 대학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캠퍼스 안에 설치하기로 지난해 결정했다. 테라파워는 와이오밍주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부지에 약 1조원을 들여 SFR 발전소를 짓고 2030년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정부 차원의 SMR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에만 SMR 연구개발에 16억5000만달러(약 2조원) 예산을 배정했다.

반면 한국은 SMR에 대한 관심 자체가 많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올해 SMR 개발 예산은 혁신형소형모듈원전(i-SMR) 31억원, 용융염원전 개발 45억원 등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탈원전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에선 원전을 주제로 한 특허 기반 전략보고서가 아예 발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